4, 5일 일본 오키나와 류큐GC에서 열린 제10회 한일여자프로골프 대항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몇 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승점 29 대 19로 일본을 꺾고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기쁨도 잠시. 시상식 후 주장 이지희(30진로저팬)를 헹가래치던 한국 선수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싹 사라졌다.
하늘로 떠올랐던 이지희는 하필이면 시상대 철제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쳤다. 쇼크를 받은 이지희는 구토 증세를 보였고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정밀 검진 결과 단순 타박상으로 밝혀져 한숨을 돌렸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앞으로는 이겨도 절대 헹가래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날 해프닝은 이튿날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헹가래를 받는 것은 모든 스포츠 선수, 감독들의 꿈이다. 우승을 결정짓거나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뒤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은 맛본 사람만 알 수 있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9전 전승 퍼펙트 금메달을 이끈 두산 김경문 감독은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10회 우승을 일군 신치용 감독도 무아지경이다. 그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다고 말했다.
땅을 파는 시늉을 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농사일의 헛가래질에서 유래한 헹가래는 구성원들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함께 던져야 하고 함께 받아야 한다. 절정의 순간 이 같은 의식을 통해 구성원들의 응집력은 높아지고 단합은 강화된다.
하지만 손발이 맞지 않으면 이지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헹가래 사진 속의 많은 감독과 선수들의 표정에 두려움이 섞여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신 감독은 가끔 무서울 때도 있다. 공중에 떠 있는데 우리 놓자 아냐, 그러면 다쳐 하는 말이 들릴 때가 있다. 이대로 떨어지면 어쩌나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여자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한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은 선수들이 손을 놓는 바람에 허리를 크게 다쳤다. 2007년 이영주 전 신한은행 감독 역시 헹가래를 받다가 떨어져 새끼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다. 허리가 좋지 않았던 프로야구 김응룡 삼성 사장은 2006년 우승 후 헹가래를 피해 사라지기도 했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전북을 우승으로 이끈 최강희 감독은 헹가래 도중 누군가가 머리를 툭툭 때리자 이것들이 아주 날 죽이네라고 말했다. 반면 김경문 감독의 올림픽 헹가래 사진을 보면 선수들에게 완전히 몸을 맡긴 것으로 보여 대조적이다.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많은 선수들이 헹가래 도중 장난을 치면서 평소에 어렵기만 하던 감독이나 고참 선수와의 벽을 허문다. 악의 없는 장난을 통해 그간의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헹가래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 주로 남아 있다. 일본에서는 도아게()라고 하며 야구에서는 우승을 결정짓는 마무리 투수를 도아게 투수라고 부른다. 1985년 한신이 센트럴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흥분한 오사카 팬들은 타격 3관왕인 외국인 선수 랜디 배스와 닮은 KFC 마네킹을 헹가래친 뒤 강에 빠뜨리기도 했다. 올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을 헹가래친 것처럼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헹가래가 이뤄진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