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인사청탁에 해당하는 한자어에 분경()이란 말이 있다. 분추경리()의 준말인 분경은 벼슬을 얻기 위해 고관대작이나 권세가들을 분주하게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도 인사청탁이 극심해 정종은 1399년 분경금지법까지 만들었지만 바로 이듬 해 대사헌이 분경에 연루돼 귀양을 갔다. 세종 때인 1447년에는 우부승지 아들의 인사청탁 사건으로 좌우 부승지는 물론 이조 참판과 참의까지 파면됐지만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분경과 비슷한 말로는 관직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는 뜻의 엽관()이 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선거 공신과 열성 당원을 공직에 임명하는 엽관제(Spoils system)가 실시됐다. 엽관제의 영어식 표현이 전리품은 승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란 윌리엄 마시 연방 상원의원 말에서 유래한 것은 관직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당연시했음을 보여준다. 엽관제는 1881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대사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찰스 귀토에게 암살된 사건을 계기로 사라지게 됐다. 엽관제를 대체한 것이 능력을 기준으로 공직자를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현재의 메리트 시스템이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지난달 27일 참모회의 때 외부인사를 통해 자신에게 인사청탁을 한 경정들의 명단을 불러준 뒤 특별 관리하도록 했다. 조 청장은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고 일부에 대해서는 불이익도 줬다지만 청탁 근절을 위해서는 명단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충격적인 조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과거 경찰 인사청탁 루트는 국정감사, 예산심의, 인사청문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나 권력 실세들이었다는데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하다.
지연 학연 등 연고의식이 유별난 우리나라에서는 인사청탁이란 공직사회의 고질병이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때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형의 경우를 포함해 인사청탁 공화국을 만들다시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깨끗한 인사, 능력 위주 인사를 강조하지만 현 정부도 인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크게 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