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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이 기쁜날 온 국민이 피겨퀸 따라 울다가 웃었다

울지마, 이 기쁜날 온 국민이 피겨퀸 따라 울다가 웃었다

Posted February. 27, 20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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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려봤지만 좀처럼 주체할 수 없었다.

김연아(20고려대)는 연기를 마친 뒤 흐느끼기 시작했다. 13년 동안 스케이트를 타면서 수도 없이 흘렸던 눈물. 힘들어서 울고 아파서 울고.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팬들에게 눈물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큰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는 느낌에 가슴 한구석은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승리를 예감한 듯 보였다.

26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조지 거슈윈 작곡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4분 9초 동안 빙판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초반 3차례 점프에서 메달 색깔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연속 3회전)에 이어 트리플 플립(3회전),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2회전 반 점프에 이어 다시 연속 2회전 점프)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 난도가 높은 점프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그는 거칠 게 없었다. 1만5000여 관중은 마법에 걸린 듯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집중하며 쉴 새 없이 탄성을 터뜨린 뒤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한 치의 후회도 없는 무결점 연기를 마친 김연아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키스앤드크라이존에서 점수를 기다리다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50.06점. 24일 쇼트프로그램에서 따낸 78.50점을 합쳐 역대 여자 싱글 최고 기록인 228.56점이었다. 완벽한 우승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 줄 몰랐던 김연아는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목에는 유난히 반짝거리는 황금빛 메달이 걸려 있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가가 다시 한 번 촉촉이 젖어 들었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본격적으로 스케이트에 매달렸을 때부터 그토록 갈망했던 목표를 이룬 데 대한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팬들도 함께 웃고 울었다.

누구나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을 당연하게 여겼다. 기대가 큰 만큼 심리적 압박은 커져 의외의 성적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5차례 올림픽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가 금메달을 딴 적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크리스티 야마구치(미국)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이다. 김연아가 여덟 살 때 TV를 통해 지켜봤던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서는 미셸 콴(미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은메달에 머물렀다. 김연아 같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가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달랐다. 흔히 말하던 올림픽 징크스마저도 후련하게 날려버렸다. 주변의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꾸준한 훈련과 특유의 자신감으로 정면 돌파했다. 솔직히 어느 때보다 부담이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모든 걸 맡겼다는 게 그의 얘기. 그만큼 철저한 준비 과정을 통해 자신이 넘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24일 쇼트프로그램에서도 그는 자신보다 바로 앞서 연기한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가 시즌 최고점을 기록해 흔들릴 만도 했으나 싱긋 미소까지 지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성호를 긋고 빙판에 오른 그는 오히려 아사다를 압도하는 역대 최고점으로 금메달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역사에 남을 무대였다는 찬사를 들은 김연아는 갖가지 기록도 남겼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2009년)와 그랑프리 파이널(2006, 2007, 2009년), 4대륙선수권대회(2009년) 우승에 이어 올림픽 제패까지 해 여자 싱글 선수로는 사상 첫 그랜드슬램에 마침표를 찍었다.

변방으로 불리던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저력도 만방에 과시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1968년 그르노블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이광영(남자)과 김혜경 이현주(이상 여자)가 처음 출전했으나 메달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출전조차 못하기 일쑤였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점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그가 기록한 역대 최고점(133.95점)을 16.11점이나 뛰어넘은 대기록이다. 이날 받은 총점 228.56점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여자 싱글 최고점(210.03점)을 18.53점이나 갈아 치운 대기록. 벌써부터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에번 라이서첵(러시아)은 257.67점으로 금메달을 땄다. 김연아의 기록은 남자 싱글에서는 출전선수 24명 중 9위에 해당한다. 김연아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남자 선수가 16명이나 된다.

피겨스케이팅 싱글은 남자 선수들의 점프 난도가 높아 여자 선수들과는 보통 6070점의 차가 나기 마련이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예브게니 플류셴코(러시아)는 258.33점을 기록한 반면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아라카와 시즈카(일본)는 191.34점이었다. 김연아 스스로도 내가 받은 점수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남자 선수들의 점수에 육박한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김연아의 폭발적인 점프와 우아한 연기 구성은 남녀의 장벽마저도 뛰어넘을 기세다.

꿈을 이룬 김연아. 이제 김연아는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김연아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오늘의 영광으로 결실을 맺었다. 김 선수의 승리를 향한 열정과 투지는 국민 모두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줬다며 이번 금메달은 쇼트프로그램, 프리스케이팅, 점수 합계 모두에서 세계 신기록이라는 위업을 달성해 더욱 값지다. 나라와 국민의 명예를 드높인 밴쿠버 올림픽의 영웅, 김연아 선수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린다고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