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열차 편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 방문을 시작했다. 과거 4차례의 방중()이 그랬듯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일정과 동선()을 숨기고 있다. 중국도 북한도 아무런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잠행() 정상외교다. 김 위원장이 이른바 혈맹인 중국에서도 신변안전이 두려워 숨어 다닐 수밖에 없는 겁쟁이 지도자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이번 방중은 중국의 초청에 따른 것이어서 시기 선택에 고도의 외교적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천안함 침몰 35일 만인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위문을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5000만 한국 국민이 천안함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불과 사흘 뒤 김 위원장의 방중을 수용했다. 후 주석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안함 폭침 사태가 북한 소행이라는 추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우리 영해를 침범해 초계함을 침몰시키고 46명의 장병을 숨지게 한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도발이다. 북한군의 소행임이 확인되면 김 위원장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김 위원장의 방중은 세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밖에 없다. 만약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끌어안는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초청해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 없다. 김 위원장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진실을 고백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중국은 북-중 혈맹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천안함 사태를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사안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김 위원장의 구명()에 나선다면 도발 책임도 함께 져야 할 것이다.
국제 제재를 받는 북한으로선 중국의 경제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다롄의 항만시설과 조선소는 북한의 라진항 건설을 위한 학습현장이다. 북한은 북-중 경제협력과 대북()투자 확대를 위해 중국의 동북3성 개발에도 관심이 크다. 김 위원장은 2004년 방중 때처럼 이번에도 위기모면용으로 6자회담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후계자인 3남 김정은에 대한 세자 책봉 허락을 요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 천안함을 비껴간다면 국제사회는 북-중이 한통속이라고 볼 것이다.
중국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를 주도해왔다. 천안함이 아니더라도 노골적으로 핵 보유를 주장하는 북한에 어떤 경제적 정치적 선물도 안겨선 안 될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