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루르 탄광지대의 함보른 광산을 찾았다. 당시 서독에는 현지인들이 힘들다고 기피하던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한국인 남녀 3500여 명이 있었다.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어 이력서에 학력을 낮춰 쓰거나, 까만 연탄에 손을 비벼 거친 손을 만든 뒤 면접장에 들어가 서독행 비행기를 탄 사람도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도 안 되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하나였다.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고향이 어디라고 말을 꺼내자 간호사들은 이국생활의 설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애국가 제창 때는 광부와 간호사,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수행기자들이 모두 흐느꼈다. 박 대통령은 눈물바다 속에서 이뤄진 격려연설 도중 준비해간 원고를 덮고 말했다.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으실 줄 생각되지만 우리 모두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땅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요. 우리는 언제 한번 잘 살아봅니까?라고 절규했다. 광부들은 박 대통령과 동행한 뤼브케 서독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하면서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고 호소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깊은 감동을 받고 한국에 대한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방한 중인 세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한국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을 만나 격려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46년 전 고국의 대통령을 만나 울음을 터뜨린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을 떠올린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 송금한 외화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 감사드린다는 하시나 총리의 말도 남의 일 같지 않다. 1인당 소득 574달러의 가난한 나라이지만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으로 차츰 성과를 올리는 방글라데시의 도약을 기대한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처절한 가난을 모르는 우리 젊은 세대도 대한민국이 걸어온 경제발전의 험난한 길과 이를 위해 앞 세대가 흘린 눈물과 피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