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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성배 내려놓다

Posted July. 03, 20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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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허정무 감독(57)이 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임했다. 2007년 12월 7일 대표팀을 맡은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회견 내내 허 감독의 얼굴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홀가분함과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허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포함해 2년 6개월을 달려오며 보고 느낀 점이 많다. 잘못했던 점, 부족했던 점, 해야 할 일을 되짚으며 연구, 검토하고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사임 결정을 내린 시기는.

월드컵 준비 기간에도 코칭스태프에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월드컵을 마치면 시간을 갖겠다고 얘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 같아 서둘러 (사임을) 발표하게 됐다.

이번 대회를 통해 느낀 점과 향후 계획은.

한국축구가 과연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체력, 정신력, 조직력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 운영, 패스, 볼 터치, 일대일 상황에서의 돌파, 영리한 플레이 등 기술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꾸준히 추진하면 반드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 한국축구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든지 기여하고 싶다. 할 일은 도처에 수도 없이 많다.

그동안 좋았을 때와 힘들었던 때를 꼽는다면.

내 별명이 오뚝이다. 원래 좌절을 잘 안한다. 중국에 0-3으로 지고,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에 1-4로 졌지만 어느 팀이든 질 때가 있다. 오히려 질 때 느끼는 게 많다. 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행복한 순간이라면 이번 대회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이겼을 때, 16강이 확정됐을 때, 우루과이전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봤을 때다.

허정무 리더십을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하는데.

네덜란드에서 선수로 뛸 때 지도자와 선수 간의 미팅은 격렬했지만 끝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인상 깊었다. 지도자로 입문하면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소통이 한국 현실에서 사실 어렵다. 선수들에게 솔직한 얘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선수들끼리, 선수와 코칭스태프끼리 대화하도록 시간을 주고 유도하기도 했다.

1986년 선수로, 그리고 트레이너, 감독으로 여러 차례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선수로, 트레이너로 월드컵에 나설 때마다 후회가 남고 아쉬웠다. 2000년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날 때도 그랬다. 2007년 말 다시 맡겨줘 감사하다. 이번 만큼은 정말 잘해보자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래도 끝나고 나니 또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김성규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