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쟁점 논의를 위한 통상장관회의가 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시작됐다. 이번 회의는 9일까지 예정돼 있지만 양측은 상황에 따라 10일까지 연장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되도록이면 11일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개막 전 어떤 형태로든 합의안을 도출해 낸다는 각오여서 통상장관회의 첫날 협상장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8일 오전 11시 정각 외교통상부 청사 2층에 모습을 드러낸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 등 협상단 10여 명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포토라인을 지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회의장으로 올라갔다. 913호 통상장관회의장에는 한국 측 대표로 김종훈 본부장과 최석영 FTA 교섭대표 등 4명이, 미국 측 대표로 커크 대표와 커틀러 대표보 등 4명이 자리 잡았다. 미국 측은 장관급 회의에 앞서 있었던 47일 차관보급 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분야의 비관세 장벽을 없애라며 우리 쪽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은 연비 규제에서의 우리 쪽 양보를 강조하며 더 이상의 요구는 국내 여론 등을 감안해 곤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미국 정부는 특히 연비 규제 완화 외에도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25%) 원상회복 한-유럽연합(EU) FTA에서 인정하고 있는 제3국 부품에 대한 관세 환급액 제한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번 회의 자체가 이미 타결된 협정문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 측의 요구로 열린 만큼 협정문 수정은 불가한 점 미국 의회 내에서의 자동차 쇠고기 분야 비판은 과장된 것이라는 미국 내의 일부 여론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맞섰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애초부터 받을 것은 없고 줄 것만 있는 수세적 입장에서 협상을 펼쳤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원래 외교가에서는 시한을 정해놓고 하는 협상만큼 바보 같은 협상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서울 G20 전 타결 원칙을 천명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에 이명박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하면서 당초부터 위험부담이 큰 협상을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이번에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중간선거 패배로 입지가 좁아진 국내에서도 정치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협상 타결을 위해 적당한 선에서 한국 측과 합의해도 겨우 그것 얻으려고 이제까지 끌었느냐는 야당 등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 대통령 역시 일부 미국 측 요구만 수용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면 협상 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국회 비준 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 크다. 반면 미국 요구에 대한 반대급부를 챙기려면 재협상 수준으로 판이 커질 가능성 있는데다 시간도 모자란다. 이 때문에 우리 쪽 협상단 내부에서조차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서울 G20 정상회의 전 타결 원칙을 강조할 때부터 우리가 뭔가를 내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분위기가 조성될까봐 우려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협상이 진행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요소만 고려한다면 미국 측의 조기 타결 의지와 관계없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주고받기 식의 협상을 주장할 수 있지만 한미 관계와 국제정치적 요소를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미국에 최대한 적게 양보하면서 한미 FTA 현안 논의를 조기에 타결시키기로 입장을 정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혜진 부형권 hyejin@donga.com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