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다. 남자 100m, 200m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볼트는 2008, 2009년 잇달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가 됐다. 그런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프린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직은 이르다. 볼트의 출현 이전에 칼 루이스(50미국)가 이룬 업적은 당분간 그 누구도 뛰어넘지 못할 성역이다.
13세에 멀리뛰기로 육상을 시작해 단거리로 영역을 넓힌 루이스는 20세였던 1981년부터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메이저대회인 1983년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 100m, 400m 계주, 멀리뛰기 3관왕에 오르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루이스는 이듬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더 빛났다.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금메달로 4관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우상이었던 제시 오언스(19131980미국)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달성했던 신화를 48년 만에 재현했다. 올림픽 육상 4관왕은 오언스와 루이스뿐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루이스는 한눈을 팔지 않고 육상에 전념했다. 1987년 로마 세계선수권 3관왕, 1988년 서울 올림픽 2관왕, 1991년 도쿄 세계선수권 3관왕 등 2개의 메이저대회를 오가며 금메달 수를 늘려갔다. 30세였던 도쿄 대회에서는 9초86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100m 세계기록을 갈아 치우기도 했다.
루이스의 돋보이는 점은 꾸준함이다. 나이가 들면서 단거리 종목 능력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그를 육상에 입문하게 했던 멀리뛰기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35세인 그에게 금메달을 안겨줬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 개인종목에서 4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그를 포함해 셋뿐이다.
볼트 역시 루이스처럼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6세이던 2002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200m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고 2004년 같은 종목에서 최초로 20초의 벽을 무너뜨린 선수가 됐다. 볼트의 메이저대회 데뷔 무대는 루이스에 비해서는 초라했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200m,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듬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볼트에게 필적할 선수는 없었다. 그는 100m, 200m,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3종목 모두 세계신기록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도 함께 세웠다. 볼트는 1년 뒤 베를린 세계선수권 100m, 200m에서 다시 자신의 기록을 깨뜨리며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기록만 보면 볼트가 앞서지만 시대가 다른 두 선수의 기록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1980년대 육상 트랙은 지금처럼 탄성이 좋지 않았고 요즘처럼 과학으로 무장한 육상화도 없었다.
루이스는 올림픽에서 9개, 세계선수권에서 8개의 금메달을 땄다. 볼트는 한 번씩 출전한 두 메이저대회에서 3개씩 금메달을 얻었다. 볼트는 언젠가는 멀리뛰기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멀리뛰기는 빨리 달릴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훈련이 뒷받침된다면 볼트의 메달 가능성은 충분하다.
루이스는 IAAF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선수다. 현존하는 최고 스프린터 볼트는 훗날 21세기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을까.
이승건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