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의 이메일 ID는 shindarc였다.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여걸 잔 다르크와 자신의 성()을 합성해 한국 미술계의 구원자를 자처한 듯하다. 탄핵 역풍으로 침몰 직전이던 한나라당이 2004년 총선과 재보선에서 기사회생하자 당시 천막당사를 이끌던 박근혜 대표에겐 박 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세대 대권주자로 꼽은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당찬 성격 때문에 추 다르크로 불렸다. 추 의원은 1997년 대선 때 고향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잔 다르크 유세단을 조직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잔 다르크가 본고장 프랑스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 우파 후보들이 잔 다르크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잔 다르크 탄생 600주년인 오늘 파리의 잔 다르크 동상 앞에서 성대한 축하 집회를 연다. 이에 질세라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잔 다르크가 태어난 마을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지지율 2위의 사르코지는 3위 르펜이 바짝 따라붙자 초조해 하고 있다. 재정 위기와 대선자금 스캔들로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반면에 르펜은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의 원조()극우 노선에서 탈피해 유연한 보수 전략으로 점수를 얻고 있다. 좌파 진영의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지지율 1위로 느긋하게 우파의 내부 싸움을 즐기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급진파 자코뱅당이 의회 왼쪽에, 온건파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은 데서 비롯됐다. 15세기 인물인 잔 다르크에게는 좌우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용맹한 전사() 이미지와는 달리 잔 다르크는 법정에서 칼과 창을 휘두르기보다 주로 깃발을 들고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밝혔다. 그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 중에도 전투 장면보다는 단아한 자태를 그린 게 많다. 잔 다르크를 굳이 마녀로 몰아 처형한 것은 여자인 주제에 감히 신의 계시로 전장에 나왔다고 한 그를 괘씸하게 여겨서인 듯하다. 잔 다르크 덕에 프랑스 왕이 된 샤를 7세는 그를 구할 수 있었지만 끝내 외면했다. 그가 너무 위대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인은 편견과 배신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건가.
이 형 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