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취임했다. 1978년 12월 27일 부친인 박정희 9대 대통령 취임식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했던 그는 35년 후 취임식의 히로인이 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아버지와 같은 61세의 나이다. 그는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레이디로, 대통령의 자격으로 취임식에 참석하는 진기록을 낳았다.
대통령 취임식 장소는 한국 민주화와 정치사의 궤적을 보여준다. 건국의 기틀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13대)은 중앙청을 선호했다. 419혁명 이후 취임한 윤보선 4대 대통령은 취임식 장소를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으로, 대통령 취임사는 대통령 인사로 바꿔 몸을 낮췄다.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59대)은 중앙청 광장으로 되돌아갔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당선된 8대와, 9대 취임식은 장충체육관 실내에서 열렸다. 전두환 대통령(11, 12대)은 장소만 잠실체육관으로 바꿨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이 애용된 건 1987년 민주화와 직선 대통령 등장 이후다.
체육관 밖으로 나온 취임식은 축제의 장으로 진화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선언한 노태우 13대 대통령은 1988년 취임식에 일반인을 처음 초청했다. 21발의 예포 발사도 했다. 국가 공식행사에 국악이 쓰인 것도 이때부터다. 김영삼 14대 대통령은 임기 개시에 맞춰 33번의 보신각종 타종 행사를 도입했다. 이후 신한국 창조-다함께 앞으로(김영삼), 화합과 도약의 새출발(김대중), 새로운 대한민국 하나된 국민이 만듭니다(노무현), 함께 가요 국민 성공시대(이명박), 통합과 전진, 국민의 삶 속으로(박근혜) 같은 주제가 있는 취임식이 등장했다. DJ DOC(김대중), GOD(노무현), 김장훈(이명박), 싸이(박근혜) 같은 연예인 공연도 식전행사로 펼쳤다.
취임식 전 외환위기(김대중), 대구지하철 참사(노무현), 숭례문 화재(이명박), 북한 3차 핵실험(박근혜) 같은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는 징크스가 이어졌다. 세월은 시민의 위상도 바꿨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인 대표 자리를 단상 위로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족석을 단상 밑으로 내렸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함께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궜지만 80년대 복지국가 건설의 비전만 제시하고 멈춘 아버지에 대한 헌사처럼 들린다. 그가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완수하려는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로서 직무를 수행하면 좋겠다.박 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