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불똥이 정치권을 넘어 언론계로 번지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jtbc의 손석희 앵커가 그제 밤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룸 2부에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육성 녹음파일을 공개한 게 발단이다. 이날 방송에서 공개된 육성의 출처는 고인이 자살하기 전에 경향신문 기자와 가졌던 인터뷰의 녹음파일이다. 유족과 경향신문은 jtbc가 녹음파일을 동의 없이 무단 공개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신문사와 방송사 사이에 전운이 감돈다.
이 파일은 그제 경향신문이 검찰에 녹음파일을 제출할 때 참여한 디지털 관련 과학수사 전문가 김 모 씨가 멋대로 jtbc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언론사가 취재한 녹음파일을 허락 없이 내보낸 것은 언론사의 뉴스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세상의 감춰진 진실을 추구하고 불법과 불의를 파헤치는 기자들에게는 다른 분야보다 엄격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남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는 언론인 스스로에게 더 철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법적인 판단이나 언론 윤리를 떠나 죽은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도 언론이 지켜야할 선을 넘었다. 성 회장 유족들은 고인의 육성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며 방송 중단을 강하게 요청했으나 묵살됐다고 한다. 방송에서 굳이 고인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공익적 목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번 일은 정파적 성향으로 인한 신뢰 하락에 이어 상업주의 폐해까지 오늘날 언론이 극복해야 할 여러 과제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손석희 앵커는 녹음파일 공개에 대해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세간에서는 시청률 목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성완종 회장의 육성이 방송된 당일 뉴스룸 2부는 4% 대 시청률을 넘어섰다. 뉴스룸 1부의 시청률 2%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높았다. 해마다 모 주간지의 설문조사에서 언론인 개인의 신뢰도와 영향력 부문 1위를 차지한 손석희 앵커, 지금 그는 웃고 있을까.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