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가 각종 막말에도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유지하자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라는 고육지책을 검토하고 있다. 내년 2월 1일 아이오와 주를 시작으로 6월까지 이어지는 예비경선에서 특정 후보가 전체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당이 정치적 중재에 나서 대선 후보를 알아서 지명하겠다는 것.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은 7일 공화당 유력 인사 20여 명과의 만찬에서 이 같은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중재 전당대회는 공화당이 1948년, 민주당이 1952년 각각 마지막으로 개최한 바 있으며 현대 미국 정치에선 사실상 사장()된 제도다. 다수결 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 우리로 치면 민심이 배제된 체육관 선거를 하겠다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미국 대선 예비경선에서 1위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도 후보로 지명돼 왔다.
공화당 지도부가 이런 구시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민주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양자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클린턴을 이긴 적이 거의 없다. 8일 USA투데이 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 클린턴은 48%, 트럼프는 44%였다. 반면 공화당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과의 대결에선 클린턴이 45%, 루비오가 48%로 오히려 공화당이 이겼다.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틈만 나면 기성 정치권을 조롱하는 것도 공화당 지도부가 그의 후보 지명을 막으려는 이유다.
이에 트럼프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여론조사 추이로 봐서는) 중재 전당대회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약에 그렇게 된다 해도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당이 나를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탈당해 제3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한 트럼프인 만큼 중재 전당대회 개최 시 무소속으로 나서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이 하락세인 또 다른 아웃사이더 벤 카슨도 성명을 내고 중재 전당대회 시 트럼프가 당을 떠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탈당해도 제3후보로는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