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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이 만든 철학자 신영복

Posted January. 19, 201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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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첫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왔을 때 감옥에서 그런 맑은 사색을 끌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랐고 그 저자가 무기수 사상범이라는 데 놀랐다. 소주 처음처럼이 나왔을 때는 상표의 정겨운 글씨체가 신영복의 것이라는 데 대해 다시 놀랐다. 그의 강의나 담론을 읽으면서 동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신선한 해석에 거듭 놀랐다.

신영복은 김형욱이 만든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 재학 시절의 활동으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다. 김형욱의 중앙정보부의 수사는 가혹했을 것이다. 신영복이 실제보다 더 깊이 연루된 것처럼 기소됐을 가능성이 있다. 몇 년 살고 나오게 했으면 그만일 것을 20년 동안이나 가둬두는 바람에 그는 뜻하지 않게 철학자가 됐다. 감옥에서 한학자 이구영과 한방을 쓰면서 한학을 배웠고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난 사람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영복은 한홍구와의 인터뷰에서 통혁당 간첩 김종태에게 포섭된 김질락이 정색하고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온다.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에서 친노 정치인 한명숙의 남편인 박성준의 상부선이었다. 통혁당 사건은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실체를 증언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의 많은 사상범이 민주화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신영복은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혁명을 꿈꾸었던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누군가가 인간적으로는 볼셰비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신영복이 싫어서 소주 처음처럼을 마시지도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신영복이 보여준 정신세계는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두루 사랑을 받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가슴보다는 실천하는 발이 중요하다는 교훈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감동을 준다. 저세상으로 떠난 신영복 앞에서 이념은 부질없어 보인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