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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젭 부시의 굴욕

Posted February. 23, 2016 07:15   

Updated February. 23, 201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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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父子)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의 부시가(家)가 삼세번 ‘가문의 영광’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대선의 공화당 경선 후보로 나선 젭 부시가 경선 내내 군소 후보 틈에 끼어 있다가 예선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남편 뒤에서 사퇴 연설을 지켜보던 부인 컬럼바 씨는 눈물을 쏟았다. 워낙 수줍은 성격에 군중 앞에 나서지 않고 대선 출마도 반기지 않았다는 아내의 눈물. 일생 탄탄대로를 걸은 남편의 상실감과 좌절이 그만큼 안타까웠을 터다.

 ▷좌충우돌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하면 젭 부시는 유약한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부시는 사랑에서는 못 말리는 저돌성을 발휘했다.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 3학년 재학 중 학교 프로그램을 따라 멕시코에 갔던 그는 여고생 컬럼바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백인 상류사회에서 배필을 찾는 가문의 전통이나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히스패닉계 첫사랑과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40여 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온 그는 자신의 인생을 ‘컬럼바 이전과 컬럼바 이후’로 나눠 말한다.

 ▷정치판에서는 이런 우직함과 뚝심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아버지와 형님, 두 전직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양당 후보 중 최다 선거자금 확보, 플로리다 주지사 출신의 경륜 등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젭 부시. 막상 경선 과정에 돌입해 보니 사람들이 그의 최대 강점으로 평가했던 명문가 출신의 준비된 후보란 사실이 가산점 아닌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막판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엔 연로한 어머니와 형까지 불러왔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트럼프 돌풍의 최대 피해자라는 분석도 있다. 제도권 세력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여론을 좌우하면서 대중은 부시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했다. 부시의 뒤늦은 좌절이 새삼 ‘금수저’라고 으스댈 것도, ‘흙수저’라고 괜히 기죽을 필요도 없음을 일깨워 준다. 약점이 때론 장점이 되고 장점은 곧 약점이 된다는 것, 삶의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진리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