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개발의 최종 목표가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 확보라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북한이 지난 20여 년간 핵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집착해온 까닭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달 ICBM급 신형 로켓 엔진 성능 실험을 참관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17일 “김정은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대미(對美) 핵게임의 ‘조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전술적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로 여긴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탑재 ICBM을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한 핵심 열쇠로 보고 있다. 핵탄두를 실은 ICBM은 사용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핵강국’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탑재 ICBM을 가진 나라는 5대 핵보유국(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밖에 없다. 또 미 본토까지 날아가는 핵탑재 ICBM을 실전배치하면 국제사회가 더는 손쓸 도리가 없다고 보고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뒤 대미 핵군축 협상을 벌여 핵동결을 대가로 외교·경제적 실익을 극대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와 대미·대남 핵협상 주도권의 지속적인 확보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핵탑재 ICBM은 미국의 대한(對韓)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은 북한이 한국을 핵공격 하면 미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핵과 재래식 전력을 총동원해 보복 응징한다는 방침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탑재 ICBM이 워싱턴이나 뉴욕을 조준할 경우 이 같은 확장억제 공약이 지켜질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은 증폭핵분열탄이나 수소폭탄 등 한 발로 도시를 초토화하는 강력한 핵탄두를 ICBM에 실어 미국의 확장억제를 무력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실전배치한 뒤 더 대담하고 강도 높은 국지적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백령도 등 서북도서나 최전방 요충지를 기습 강점한 뒤 핵공격 위협으로 한국군의 반격 작전을 봉쇄하고 휴전선 재획정 등을 요구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한국군이 반격할 경우 인구밀집지역 상수원 등에 일반 폭약에 방사능 물질을 섞은 ‘더러운 폭탄(dirty bomb)’을 떨어뜨려 오염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개전 초기 미 증원전력의 핵심 통로인 한국 내 주요 항구와 비행장을 핵미사일로 공격하거나, 전쟁 막판 한미 연합군의 반격으로 정권이 존립 위기에 처할 경우 이판사판식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핵타격을 할 개연성도 있다. 군 당국자는 “북한의 핵은 체제 유지용 협박 수단이 아닌 실전 사용을 염두에 둔 현실적 위협으로 보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