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향후 10년 동안 감세 규모가 1조5000억 달러(1623조 원)에 이르는 개정세법을 확정했다. 20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은 35%이던 법인세율을 21%로 내리고, 기업이 해외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금에 매기는 송환세율도 35%에서 12∼14.5%로 인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31년 만에 추진한 대규모 감세법안 처리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경제엔진에 로켓연료를 퍼붓게 됐다며 “이 법안 통과는 많은 기업의 귀환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라고 세 번 강조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한국의 법인세율(25%)이 미국보다 4%포인트 높아지는 세율 역전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보호무역주의 탓에 미국이 세계 경제의 공적이 된 측면이 있지만 감세조치로 현 행정부가 자국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을 최우선시하는 정부임을 보여주게 됐다. 감세안 발표 직후 미국 AT&T와 컴캐스트가 전 직원에게 1인당 10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키로 한 것은 행정부와 의회의 친(親)기업 행보에 재계가 화답한 것이다. 피프스서드뱅크, 월스파고은행 등은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임금 인상을 압박하지 않아도 기업환경 개선으로 전체 파이가 늘면 노동자의 몫도 늘어나는 낙수효과는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세제만이 아니라 사업전망과 재무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만큼 법인세 인하가 반드시 투자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보는 핵심 요인 중에 세금이 포함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법인세율이 1%포인트 인하될 때 투자는 0.2%포인트 증가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있다.
미국의 감세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지역의 법인세 인하 속도가 빨라지고 전 세계에 기업 유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나 홀로 증세에 나섰을 뿐 아니라 대기업 공익재단 57곳의 운영실태 조사, 대기업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지원 축소 등으로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어제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SDI가 매각해야 했던 주식 수가 잘못 산정됐다며 가이드라인을 바꾸면서 404만 주 추가 매도를 결정했다. 올 8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1심 법원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정부의 결정이 1심 판단만으로 번복된 것이어서 기업으로선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12일 LG그룹 경영진을 만나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한 축”이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기업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미 법인세율 인상을 확정한 우리로서는 다른 분야에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보완책을 준비해야 한다. 규제개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것과 더불어 기업가의 창의성을 보장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압박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 내 공장을 짓고 있지만 언젠가 자발적 이탈이 벌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