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5월 한미 합작으로 한국 최초의 방송국 HLKZ-TV가 설립됐다. 같은 해 7월 이 방송국에서 한국 첫 드라마 ‘천국의 문’이 방송됐다. 최상현과 이낙훈 두 배우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연극을 촬영해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9월 제작된 드라마 ‘사형수’는 60분 분량에 카메라도 2대나 동원됐고, 클로즈업 촬영까지 곁들여져 드라마다운 모양새를 갖추게 됐지만 역시 생방송이었다. 녹화 장비가 없던 당시로서는 쇼나 드라마는 물론이고 CF까지 생방송했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이후에도 생방송 드라마는 종종 나왔다. 2005년 11월 미국 NBC의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의 에피소드 ‘토론(The Debate)’이 화제가 된 것도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의 토론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정치 현안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드라마를 준비한 배우들은 미국 내 시차를 고려해 ‘동부용’과 ‘서부용’ 두 차례에 걸쳐 생방송 연기를 소화해 냈다. 생방송의 극적인 효과는 철저한 준비와 연습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생방송 드라마’는 그 의미가 다르다. 스타 배우의 일정과 작가의 쪽대본, 시청률을 의식하는 방송국 등 여러 요인이 겹쳐 한 회, 한 회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드라마에 대한 조소다. ‘태양의 후예’처럼 사전 제작으로 히트한 드라마도 있지만, 제작사들은 협찬을 받기 어렵고 시청자의 피드백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전 제작을 기피하고 있다. 시청률이 낮으면 대본을 바꾸고 높으면 방영을 연장하는 현실에서 사전 제작은 언감생심이다.
▷이 생방송 드라마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tvN 드라마 ‘화유기’가 24일 방영 도중 화면 송출을 중단했다. 두 차례 지연됐다가 송출된 화면에서도 컴퓨터그래픽(CG) 처리가 안 돼 와이어와 초록색 배경화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60여 년 전 진짜 생방송 드라마보다 못한 일이 벌어졌다. tvN 측은 “제작진의 욕심이 실수로 이어졌다”지만 제작진의 의욕 과잉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국 드라마 제작의 낯 뜨거운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냈다.
주성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