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3일 판문점 연락망 개통에 이어 어제 오전에도 먼저 남측에 전화를 걸어왔다. 남측이 “알려줄 내용이 있느냐”고 묻자 북측은 “없다. 알려줄 내용이 있으면 통보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업무개시를 알리는 간단한 통화였지만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점은 긍정적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북측 대표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나온다면 남측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에서도 고위급이 나왔으면 한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한다는 의미겠지만, 협상을 앞두고 우리가 서두르거나 기대감을 드러내는 일은 삼가야 한다.
미국에서는 연일 남북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미 국무부의 카티나 애덤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3일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핵프로그램 해결과 별도로 진전될 수 없다”고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남북관계 개선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만나 “남북대화는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한 한미공조 없이는 진척될 수 없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 생각”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 남북대화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제적인 대북 압박 전선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나오는 점은 우려스럽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어제 라디오에 출연해 “평창올림픽 때 한미군사훈련 연기가 실질적으로 훈련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2007년 11월15일 남북 총리가 합의한 45개 협력사항 중 최소한 20개 정도는 유엔결의안과 미국의 독자제재가 있어도 협력이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인사들이 남북대화 재개로 마치 북핵 해결의 돌파구라도 열린 듯이 성급한 주문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북핵 해결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대화를 제의하고 남북 핫라인 복원에 성의를 보이는 것은 역으로 제재 압박이 먹혀들었다는 반증이다. 남북대화가 열려도 남측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북 압박 체제의 유지가 필수다. 우리 내부의 성급한 발언은 북한이나 미국에 잘못된 선호를 주고 북측의 몸값만 키워준다. 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가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반응을 자제하면서 통일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다. 남북대화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켜야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정부는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신중하게 전략적으로 협상을 준비해야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남북 대화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체제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가지 않도록 미국 등 우방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메시지를 정제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