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1983년 12월. 흰 가운 차림의 사나이가 실험실을 뛰쳐나와 환호했다. 그를 둘러싼 주변의 꾀죄죄한 행색의 사람들도 서로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의 이상준 박사팀. 이들은 미국 마이크론에서 넘겨받은 칩을 토대로 6개월간 밤낮없이 씨름한 끝에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반도체 업계는 경악했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기술을 개발한 일본이 꼬박 6년 걸린 일을 한국업체가 6개월 만에 해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반도체가 자본금을 잠식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자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3년 2월 그룹차원에서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도쿄 선언’을 했다.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텔은 이 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꼬았다. 당시 이병철 회장의 나이는 74세. 그는 당시 반도체 1개 라인에 1조 원이 필요했던 사업에 평생 쌓아올린 재산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612억 달러(약 65조 원)를 팔아 인텔을 꺾고 반도체 업계 1위에 올랐다고 5일 밝혔다. 삼성은 반도체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과감한 투자로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됐다.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시대가 오자 삼성 반도체는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다.
▷2일 영국의 기술전문 매체인 레지스터는 지난 10년 간 전 세계에 공급된 인텔의 CPU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해커들이 컴퓨터에 침입해 개인 정보를 쉽게 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이 결함을 지난해 6월부터 파악하고도 은폐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1992년 이후 반도체 시장의 1등을 지켜온 인텔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으면서 위기에 둔감해졌다가 1위 자리까지 내줬다. 정상에 오른 삼성전자. 지금이야말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위기론’을 다시 꺼내 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