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빙속 여제’ 이상화.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0.01초로 싸우는 경기이기 때문에 누구도 (결과를)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대로 월드컵에서 0.01초 차로 금메달을 놓친 적도 있다.
당사자인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빙판과 설원의 뜨거운 찰나의 승부 세계. 그 최종 희비는 시간 기록원을 의미하는 타임 키퍼의 판정에 따라 결판난다.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평창 올림픽에서는 오메가가 공식 타임 키퍼의 중책을 계속 맡았다. 오메가는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평창까지 28차례 여름·겨울올림픽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스키, 쇼트트랙 등 주요 경기장에는 오메가의 스캔 ‘오’ 비전 미리아 포토 피니시 카메라가 설치돼 초당 1만 장까지의 디지털 이미지를 포착한다. 이 이미지는 퀀텀 타이머라는 컴퓨터 시간기록기를 통해 100만분의 1초까지 분석해 우열을 가린다.
평창에서는 계측 기술이 궁극의 경지에 올랐다는 판단 아래 타임 키퍼에서도 평창 올림픽 유치 당시 슬로건이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게 오메가의 설명이다.
알랭 조브리스트 오메가타이밍 사장(CEO·사진)이 이달 말 공식 발표를 앞두고 본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 따르면 평창 올림픽에서는 신개념 타임 키퍼 기술을 통해 시각적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이로써 팬들이나 관중이 경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됐으며, 선수들은 자신의 퍼포먼스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축적된 빅데이터는 선수의 장단점 분석 및 기량 향상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알파인 스키에선 스키 부츠에 센서를 부착해 점프 각도, 풍속, 속도, 위치 등을 측정해 경기장 전광판이나 TV 중계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구간별 속도 또는 제로백(정지된 자동차가 가속해 시속 100km가 되는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 같은 데이터를 알려줄 수도 있다.
스키 점프에선 플레이트에 센서를 부착한다. 점프 길이, 스피드 등을 가상현실(VR)로 분석해주는 기능도 추가된다. 아이스하키 선수 상의에 센서를 부착해 축구에서 주요 선수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히트맵처럼 이동거리, 방향, 공격루트 등을 보여줄 예정이다. 피겨스케이팅에선 점프 회전 연기를 정밀하게 분석해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과거 여름올림픽에서 이런 기술이 도입된 적이 있지만 겨울올림픽은 추위에 약한 배터리 등 기술적인 이유로 미뤄 오다 평창에서 처음 등장하게 됐다.
이를 위해 오메가는 약 300명의 타임 키퍼, 350명의 훈련된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30개의 관객용 스코어보드, 90개의 경기용 스코어보드를 포함한 230t의 장비 등을 평창에서 활용한다.
경제학과 마케팅을 전공한 조브리스트 사장은 오메가에서 15년간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업무를 맡다가 2014년 11월 오메가타이밍 CEO로 선임됐다. 한국 음식 가운데 만두를 첫손으로 꼽은 그의 경영 지론은 기록의 가치가 선수와 스포츠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다음은 평창을 빛낼 신기록과 환희의 현장을 책임질 조브리스트 사장과의 일문일답.
―평창에서 선보일 타임 키퍼와 종전 타임 키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메가는 여러 종목에서 기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선수의 몸에 부착된 특수장비 덕분에 해당 종목을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알파인 스키 선수 개개인의 활강 속도와 아이스하키 팀의 전술 포메이션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도는 기록 측정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과 움직임에 대해 정밀한 평가를 내리게 되며, 관중은 실시간으로 경기와 관련된 정보를 얻게 되어 경기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평창에서 등장할 오메가 타임 키퍼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선 엄청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각 종목 협회로부터 새 기술에 대한 허가를 받은 뒤 선수들과 실전 테스트를 진행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올림픽 때 적용하려면 때론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타임 키퍼의 역할도 바뀌는 건 아닌가.
“올림픽 경기 규정은 기계가 아니라 심판이 협의해 최종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AI 수준으로 기술 발전이 이뤄진다고 해도 기계(로봇)가 기계를 조작하도록 두진 않을 것 같다.”
―평창은 자주 찾았나.
“물론이다. 여러 차례 방문한 평창의 가장 훌륭한 점 중 하나는 모든 시설이 매우 인접해있다는 것이다. 예전 몇몇 올림픽에서는 대회 장소가 분산돼 있어 타임 키퍼 입장에서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에서 꼭 관람하고 싶은 종목은 뭔지, 즐기는 겨울 스포츠 종목이 있다면….
“스위스 출신인 만큼 겨울올림픽 종목이 친숙하다. 특히 스키, 스노보드, 아이스하키를 즐겨 한다. 평창에서는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관전하고 싶은 특정 종목에 대해 잊고 지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스피드스케이팅과 봅슬레이 관전은 매우 특별하고 굉장한 경험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국 대표 선수 가운데 알고 있는 선수가 있나.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는 지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며 세계 기록 보유자다. 최근 월드컵 시리즈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들었기에 평창에서 어떤 기량을 펼칠지 흥미롭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