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현송월 일행이 어제 평창 올림픽 기간 북측 예술단 공연을 위한 시설 점검을 마친 뒤 돌아갔다. 전날 내려왔던 경의선 육로를 통해서다. 오늘은 남북 합동 문화행사와 스키훈련에 사용될 금강산과 마식령스키장의 시설 점검을 위해 우리 측 선발대가 2박3일 일정으로 동해선 육로를 통해 방북한다. 남북 당국간 회담으로 열린 판문점에 이어 경의선, 동해선 육로 등 남북간 3대 육지 연결통로가 차례로 모두 열리는 셈이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는 3대 육로가 더욱 분주해진다. 북한이 파견할 삼지연관현악단은 판문점을 통해 내려오고, 북측 올림픽 대표단과 선수단, 응원단이 경의선 육로를 이용한다. 금강산 합동문화행사에는 우리 측이 동해선 육로를 통해 방북한다. 육로 이용은 국제적 대북제재로 항공기·선박 이용이 제한된 탓에 제재 위반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반도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의 지뢰를 제거하고 남북을 연결하는 길을 만들 때만 해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북한사회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 성과는 초라했다. 오히려 되돌아온 것은 북한의 도발뿐이었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으로 멈췄고, 개성공단은 20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로켓 발사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모두 북한의 무모한 행위로 빚어진 일이다.
나아가 두 사업의 재개는 북한 정권에 대한 현금 지원 창구로 이용될 수 있어 국제적 대북제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관광료와 임금으로 지불된 달러뭉치가 북한 군부로 흘러가 핵개발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두 사업은 북핵 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검토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재개 가능성에 여전히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통일부는 지난주 남북을 동해권·서해권·접경지역 등 3개 벨트로 묶어 개발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종합계획을 올 상반기까지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북핵문제 해결 이후를 대비한 미래 청사진이라지만 벌써부터 한편으론 기대감을, 한편으론 의구심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 기회를 평창 이후까지 잘 살려나가야 한다”며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대화를 지키는데 힘을 모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끝내 비핵화를 거부하는 한 올림픽만 끝나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남북간 올림픽 교류도 일시적 이벤트로 끝나고 말 것이다. 지금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라는 헛된 기대를 키우기보다는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李哲熙記者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