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에는 국내 다른 그룹에는 없는 독특한 조직이 있다. 전략, 에너지·화학, 정보통신기술(ICT) 등 7개 위원회로 구성된 ‘수펙스추구협의회’이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이 협의회는 2013년 공식 출범했다. 그룹 경영 최고 협의기구로 계열사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룹 차원의 전략적 검토가 요구되는 사안들은 수펙스추구협의회나 해당 위원회에서 협의 또는 심의를 한다.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각 계열사 이사회가 최종 의사 결정을 한다. 이른바 ‘따로 또 같이’ 원칙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조대식 의장은 SK그룹 안에서 최태원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실행에 옮기는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최 회장이 제시한 ‘딥 체인지’의 방법론인 사회적 가치 추구나 공유인프라 구축 등을 주도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위원장도 함께 맡고 있다.
그는 2013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4년 동안 SK㈜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OCI머티리얼즈와 LG실트론 인수를 성사시켰다. 공유차량 서비스인 ‘쏘카’에 대한 지분 투자, 유기금속화학물 생산업체 SK트리켐 설립도 진두지휘하면서 관리형 지주회사였던 SK㈜를 투자전문사로 환골탈태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5년에는 SK㈜와 SK C&C를 합병한 통합지주회사도 출범시켰다. 그 결과 조 의장이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12년 말 8조4000억 원대였던 SK㈜의 시가총액은 2016년 말 16조1400억 원대로 늘었다. 재임 기간에 기업 가치를 갑절 이상으로 키워 놓은 것이다. 현재는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력 계열사가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에너지·화학위원장인 유정준 SK E&S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해외통이자 에너지 전문가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글로벌성장위원장을 지내며 최 회장의 글로벌 행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인도네시아 페르타미나, 중국 시노펙, 쿠웨이트 KPC 등 국영 에너지 기업과 맺은 사업협력, 미국 셰일에너지업계 선두주자인 콘티넨털리소시스, 스페인 석유기업 렙솔, 일본 JX니폰오일&에너지와 체결한 글로벌 파트너십 등도 이끌어냈다.
그는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한 도시가스 지주회사였던 SK E&S를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전문회사로 성장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이 ‘친환경 에너지’로 바뀔 것으로 보고 LNG와 신재생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딥 체인지하려는 포석이다.
ICT위원회 수장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그룹의 성장동력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다. 신입사원 당시 그룹 총수였던 고 최종현 회장에게 “그룹의 미래 성장을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약한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말한 게 그룹 내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한국이동통신 인수 태스크포스(TF)에 자원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박 사장은 이후 신세기통신, 하이닉스 등 SK그룹이 추진한 굵직한 인수합병(M&A)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1월 SK텔레콤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에는 ADT캡스를 인수하는 등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보안 등 미래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룹과 계열사 간 글로벌 역량을 모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개척하는 글로벌성장위원회는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부회장은 1984년 옛 현대전자에 연구소 엔지니어로 입사한 후 34년간 SK하이닉스에 근무해 왔다. 2013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를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이끌었다. 2017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평소 임직원의 새로운 발상이 존중받고 실현될 수 있는 ‘왁자지껄한 문화’를 강조한다.
그룹의 대외 업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수장이다. 1987년 유공에 입사해 여러 관계사에서 굵직한 신사업을 담당했던 김 사장은 2015년부터 SK에너지 사장을 맡아 수익구조 혁신 등을 통해 1조 원대 적자를 내던 석유 사업의 흑자 전환을 이끌어냈다.
SK이노베이션에서는 비(非)정유 부문 강화를 통한 사업구조 혁신에 나섰다. 지난해 미국 다우케미컬의 고부가가치 화학사업 부문 인수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도 했다. 신성장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도 기존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헝가리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신설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이 2조 원을 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혁신이 거듭되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할 말은 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미래 경영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서진우 인재육성위원장은 SK그룹에서 주로 마케팅 분야와 성장동력 발굴 업무를 담당해 왔다. SK텔레콤 근무 시절 젊은 고객층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TTL’ 브랜드를 선보인 주역이다. 이후 와이더댄닷컴 대표, 넷츠고 대표,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지내며 SK그룹의 인터넷 사업을 성장시켰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SK플래닛 사장으로 플랫폼 비즈니스 기반을 닦았다. 현재 한국마케팅협회 산하 대한민국마케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 회장의 화두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한 지속성장을 지원하는 최광철 사회공헌위원장은 글로벌 건설업체인 벡텔에서 부사장 겸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지낸 엔지니어 출신. KAIST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2008년 SK건설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되면서 SK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플랜트 담당 사장과 인더스트리 담당 사장을 거쳤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SK건설 대표이사로 화공 및 발전플랜트와 글로벌마케팅, 인프라사업 부문을 총괄했다.
송진흡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