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지석(武寧王誌石·525년·국보 163호)’은 백제인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칼이 가는 대로’ 새긴, 지극히 자연스러운 글씨로서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불규칙한, 한민족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온화하며 윤기 있고 매끈하며 품위 있는 귀족풍이다. 행마다 글자의 수가 일정하지 않고 글자의 크기에도 차이가 있다. 글자 위아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점획과 자형이 정형화되지 않은 해서인데 행간 거리가 넓다. 각 행의 글자들은 중심선이 일정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장법이 정형화되지 않았다. 이렇게 개체의 개성과 자유로움이 강조되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연스럽고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통일미가 있다.
무령왕지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칠지도(七支刀·369년)’, 500여 점 남아 있는 백제 목간의 글씨들로 미루어 보면 중국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백제의 글씨는 우아하고 맑았다. 백제 이후에도 충청과 호남의 글씨체는 우아하고 맑으며 부드러운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의 강한 특성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글씨는 우아할지는 몰라도 맑지 않고, 세련되었다고 해도 자연스럽지 않다. 백제의 와당은 명랑하고 윤기 있고, 토기는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지고 있으며 불상도 고구려나 신라보다 더 부드럽고 온화하다.
고구려, 신라 글씨와의 차이는 부드럽고 온아하면서 섬세하고 세련되었으며 글자 사이의 간격과 행의 간격이 넓으며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것이다. 필선이 부드러운 것은 선량하고 맑음과 부드러움을, 글자 간격이 넓은 것은 외향적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넓은 행 간격은 조심스럽고 사려가 깊다는 것을 알려주고 속도가 다소 느린 것은 행동이나 판단이 다소 느리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