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진짜로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58)과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하루 앞둔 26일. 기자회견의 첫 질문자로 나선 독일 기자는 신태용 감독(48)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신 감독이 “세계 최고 감독과 비교된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자 독일 기자들은 냉소에 가까운 웃음을 보였다. 신 감독은 딱 달라붙는 셔츠 등 뢰프 감독과 비슷한 옷을 입을 때가 많아 ‘닮은꼴’로 불려 왔다.
하지만 27일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꺾은 뒤에 더는 독일 기자들의 웃음을 보기 힘들었다.
신 감독은 승리 소감으로 “기분은 좋지만 뭔가 허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의 가능성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선수들에게 투혼을 얘기했다. 독일이 방심할 것으로 보고 역으로 준비한 부분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경기 전날 신 감독은 사령탑치고는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우리가 조직력을 가지고 상대해도 독일이라는 벽은 쉽게 넘지 못할 것 같다.” 백기를 든 듯한 발언에 기자회견에 동석한 손흥민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골키퍼 조현우는 “우리도 처음에는 감독님의 말을 듣고 의아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선수들을 모아 놓고 ‘독일이 어떻게든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한 말이다’고 설명해 주셨다”고 말했다.
상대가 생각보다 덜 위협적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독일의 경기력이 떨어져 운이 좋은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일단 이겼으니 계획대로 잘됐다고 볼 수 있다. 상대 전력을 분석하며 4-4-2 포메이션으로 나섰지만 수비 땐 5-4-1로 변용하는 훈련을 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 줬다. 볼 점유율은 뒤지겠지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예상했다. 상대가 심리적으로 급하게 나올 것이고 그것을 잘 이용하면 우리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잘됐다”고 답했다. 2패를 당했을 때 쏟아진 비난에 대해서는 “속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것만으로 결론을 짓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속도 상했다. 하지만 우리도 잘 준비했고 잘 이겨내면 나중엔 국민들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독일을 이기면서 한 줄기 희망을 봤다”고 밝혔다.
그는 “상대가 심리적으로 급하기 때문에 그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역습을 노린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유종의 미’를 거둔 신 감독이지만 조 3위(1승 2패)에 그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이어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신 감독의 계약 기간은 월드컵 본선까지다.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29일 귀국하면 사실상 신 감독의 임기는 끝난다. 이에 따라 향후 신 감독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의 김판곤 위원장은 오스트리아 전지훈련부터 ‘신태용호’와 동행하며 신 감독을 지켜봤다.
신 감독은 월드컵 직전까지 선수 실험에 몰두하면서 조직력 강화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올인’을 선언한 스웨덴전(1차전·0-1 패)에서 역습 위주의 전략을 쓰면서도 스피드가 떨어지는 김신욱을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했다는 비판도 있다. 당시 대표팀은 유효 슈팅 0개의 굴욕을 맛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권창훈, 이근호 등 주축 선수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 소집 직전에 부상으로 빠지면서 전술 변경이 불가피했고, 이에 따라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실험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역대 대표팀 사령탑 중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후 계약을 연장한 사례는 없다. 독일전에서 승리하며 국민의 응원 소리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축구협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협회로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 분위기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신 감독이 재계약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