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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괴짜에겐 온 세상이 건축학 교과서

Posted August. 27, 2018 08:38   

Updated August. 27, 201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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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다다오(77)는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 관동지방의 도쿄가 관(官)이 만든 도시라면 관서지방의 관문인 오사카는 공리공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사업가들이 만들었다. 

 여장부인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소년은 혼자 배를 타고 태국으로 건너가 권투 경기를 치를 정도로 독립적이었다. 첫 해외 여행지인 방콕의 강과 운하, 불교 사원에 매혹된 그는 건축가를 꿈꾼다. 헌책방에서 접한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의 도면집을 베끼고 일본 전통 건축물을 답사했다. 1964년 르코르뷔지에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탄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기 직전인 53년 전 오늘(1965년 8월 27일) 르코르뷔지에는 숨을 거둔다.

 그는 1965년부터 4년간 러시아와 유럽 일대, 미국,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싱가포르 등을 여행했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 각지의 건축물은 살아있는 건축학 교과서였다. 인도 갠지스강 화장터에서는 인생무상을 깨닫는다. 29세에 건축사무소를 열고 소형 도시주택 설계부터 시작했다. 괴짜 예술가를 포용하는 관서지방의 풍토는 그가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그는 현지 지형과 풍광을 살리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금속 제련으로 오염된 섬 나오시마는 그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1992년), 땅 속에 지은 ‘지추 미술관’(2004년), ‘이우환 미술관’(2010년)으로 국제적 명소가 됐다. 홋카이도에 세운 ‘물의 교회’(1988년), 연꽃 연못을 지붕 대신 올린 ‘미즈미도 불교 사원’(1991년), 스리랑카 남부 미리사 해안 절벽에 지은 ‘바다와 하늘만 보이는 집’(2011년)은 요도가와강 상류에서 성장해 물과 친숙한 그의 특기가 발휘됐다.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고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대에서 강의했다. 20대에 버스로 미국을 횡단한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특히 초창기 퀘이커 교도의 절제된 생활과 단순한 공예품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개척자 정신으로 충만한 미국은 그와 잘 맞았다. 텍사스 ‘포트워스 미술관’(2002년)을 비롯해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등에 그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멕시코의 고산도시 몬테레이, 중국 상하이, 대만 타이중, 한국 제주도로 그의 무대는 확장되고 있다. 아시아 전통시장을 찾아다니고 베트남의 고도(古都) 후에의 흐엉강 인근 황궁을 거닐며 건축의 의미를 성찰한 그의 작품은 자연을 품은 변방에서 더 빛난다. 요즘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와 아라비아해의 섬나라 바레인을 자주 찾는다. 아랍어로 ‘행복’을 뜻하는 사디야트섬에 ‘아부다비해양박물관’, ‘바레인 유적 박물관’을 통해 담대한 기하학적 설계를 구현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18세 때의 체중 63kg을 평생 유지하고 있는 현역 건축가의 심장은 오늘도 뜨겁게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