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단체관광을 가면 가끔 식당을 볼 수 있다. 입구는 좁고 평범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깊고 새로운 공간이 계속 나타난다. 수용 인원이 수천 명이라고 한다. 이런 구조는 군사적 설계를 민가에 적용한 것이다. 저택의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갈 때도 통로가 좁고, 삼면의 창에서 통로를 감제하는 성문의 방어구조를 적용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교토의 은각사를 방문하면 좌우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시원하게 뻗어 있는 길을 만난다. 그 길을 따라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비로소 매표소가 보인다. 이 길도 기초적인 방어설계이다. 침입자는 자신을 노출하며 걸어 들어와야 하지만, 통로의 안쪽에 수비대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아시리아 제국의 궁전도, 터키의 깊은 산속에서 발견된 신비의 제국 히타이트의 궁전도 이런 길고 꺾어진 통로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조선시대 군영이었던 장용영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내부에서 무기고로 가는 길은 좁고 끝이 꺾어진 통로를 설치했던 것을 도면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국내의 치안이 확실했던 조선에서는 궁이나 민간주택에 이런 군사용 설계를 적용한 사례를 보기 힘들다.
어느 나라나 군사비는 재정 먹는 하마이다. 그러나 군사비가 소비만 되는 보험료는 아니다. 축성술은 건축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컴퓨터 같은 첨단 기술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뒤 민간에 보급되었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군사와 산업, 민간영역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막대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주택구조의 경우처럼 우리는 이런 교류에 대한 가시적인 체험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군사 분야를 필요는 하지만 불편한 분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군사정권 시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용이 있다면 바로잡아야지 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젠 민과 군이 모두 고민하고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역사학자
이원주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