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무거운 저음으로 시작해 비극을 예고하듯 한숨을 토해내는 전주. 회상하는 듯한 장식적인 음형. 이어 낯설지 않은 선율이 긴박하고 둔중한 왼손 화음 위에 흐른다. 이바노비치 ‘다뉴브강의 잔물결’. 일제강점기 소프라노 윤심덕(1897∼1926)이 노래한 ‘사의 찬미’로 알려진 선율이다. ‘거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피아니스트 박종훈에게 15일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에서 연주할 자작곡 ‘윤심덕 사의찬미 주제에 의한 쇼팽 스타일의 발라드’를 들려달라고 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해 어두운 바다에 뛰어들려는 윤심덕을 쇼팽이 만나 쓴 듯한 극적인 피아노곡이 흘러갔다. 왜 윤심덕일까.
“소나타 2번을 비롯한 쇼팽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니, 이바노비치의 이 선율이 딱 맞는 분위기를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TV에서 윤심덕과 관련된 드라마를 인상적으로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쇼팽 발라드 1번의 스타일을 따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은 2017년 ‘Back to Bach’를 시작으로 열 차례 공연하는 ‘박종훈 신작 리사이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쇼팽 편이다. ‘작곡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그는 이 시리즈에서 언제나 자기 스타일의 곡을 선보여 왔다. 바흐 때는 바흐 인벤션을 낭만주의 스타일로 편곡해 연주했고, 베토벤 때는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쳤다. 슈만 리사이틀에서는 슈만의 광기에 착안해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편곡 연주했다.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이 드러난 곡을 더 많이 쓸 생각이에요. 나이가 들면서 작곡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더군요. 슈만 리사이틀 때 연주한 ‘세 개의 짧은 환상곡, 에드거 앨런 포를 읽고’ 같은 곡은 다른 누구에 대한 오마주 없이 제 내면만을 표현한 작품이죠.”
그는 연주계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아왔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 네 차례 협연자로 섰다. 그러면서 대중과의 접점이 가장 다채로운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TV 자연다큐멘터리 음악을 제작하고 여러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음악 편곡과 연주를 맡았으며 피아노 교수, 지휘자 역으로 출연했다.
“30대 초반에 지방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 콘서트를 처음 오는 관객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심히 듣고 순수하게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그때 마음먹었죠. 처음 경험하는 사람도 음악을 좋아할 수 있도록 뭐든 하겠다고.”
‘박종훈 신작 리사이틀 시리즈 V. 쇼팽과 자작 피아노 음악’은 1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에서 열린다. 2만5000∼5만 원.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