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오래전에 포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북-미 하노이 핵담판이 ‘노딜’로 끝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비핵화 합의가 결렬됐지만 돈이 아까워서 더는 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그 며칠 뒤 키리졸브(KR)·독수리훈련(FE)의 ‘종료’ 발표에 이어 가을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도 폐지가 확정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현실이 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외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옹호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였다고 지적하는 등 한미동맹의 이상 기류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구하고,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에서 물자 이동 정황이 잇따라 포착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미 국방당국은 대규모 연합훈련의 종료(폐지)가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훈련 폐지로 명분(비핵화 협상 유지)과 실리(비용 절감)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연 그럴까.
○ 한 해 연합훈련 비용은 약 800억∼1000억 원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훈련마다 수억 달러가 지출돼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KR와 FE, UFG 등 대규모 연례 연합훈련을 하는 데 매년 수천억 원의 자국 혈세를 써왔다는 얘기다. 군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금액적으로 상당히 부풀려졌다”면서도 “그간 미국이 연합훈련 비용의 많은 부분을 부담한 점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매년 한미 연합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은 들쭉날쭉하다. 훈련 내용과 참가 전력(병력 및 무기장비)의 규모 등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전략무기가 대거 출동하면 훈련 비용은 급증하지만 통상적인 병력·장비가 참가하는 수준이라면 대폭 줄어든다.
군 당국에 따르면 2014∼2018년을 기준으로 매년 연합훈련에 투입된 비용은 약 800억∼1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 비용은 ‘자국 부담’이 원칙이다. 한미 양국군이 훈련에 동원한 자국군의 병력·장비에 소요되는 비용을 내는 것이다.
훈련 비용에는 참가 병력의 인건비와 수송비, 피복비, 부식비, 의료용품 등이 기본 항목으로 포함된다. 함정과 항공기, 전차 등 무기·장비의 유류비와 수리부품비 등도 들어간다. 이런 항목들을 합쳐 한국군이 부담한 연합훈련 비용은 연간 약 300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500억∼700억 원은 미군이 부담하는 몫이라는 얘기다. 미군의 훈련 비용 가운데 80% 이상은 각종 전략무기의 전개 비용이 차지한다. 그동안 연합훈련에 참가해온 전략무기로는 핵추진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스텔스전투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척)당 수천억∼수조 원을 호가하는 이런 전략무기들이 연합훈련이나 위기 발생 시 한 차례 한반도로 출동하는 비용도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가령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 1대가 괌 앤더슨기지에서 한국으로 한 차례 전개하는 비용은 30억∼40억 원으로 추정된다. 공중 급유와 무장 및 정비, 전투기 엄호 등이 포함된 비용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정점’을 찍었던 2017년에는 B-1B 전폭기가 거의 매달 한반도로 출격했다”면서 “그해에만 B-1B 전폭기 전개 비용이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당 가격이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B-2 스텔스폭격기의 출격 비용도 50억∼60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료비 외에 비행 후 기체 외부에 스텔스 도료를 새로 칠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 전략무기의 ‘대표 주자’인 핵추진 항모의 전개 비용도 상당한 수준이다. 웬만한 국가의 해공군력과 맞먹는 항모 1척이 한반도 해역에 한 차례 출동하는 데는 100억 원 안팎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모에 실린 최신예 군용기 70여 대의 유류비와 5000여 명에 달하는 승조원의 인건비와 수당 등이 포함된다. 항모를 호위하는 이지스구축함과 핵추진잠수함, 운용 요원 등의 운영 유지비(하루 30억∼50억 원)는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이 밖에 주일미군 기지에 배치된 F-22, F-35 스텔스전투기가 한반도로 한 차례 출격하는 데 1억∼2억 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출격 대수가 늘어나고, 실무장 폭격훈련 등을 하게 되면 전개 비용은 껑충 뛸 수 있다”고 말했다.
○ 비용 절감, 대북 지렛대 효과는 ‘글쎄…’
북-미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대로’ 한미 연합훈련이 줄줄이 폐지 및 축소되면서 미국은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과연 미국에 ‘남는 장사’인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이 얻는 금전적 효과는 700억 원으로 F-35 스텔스전투기 1대 가격(약 1000억 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올해 미 국방예산(약 7170억 달러·약 808조 원)의 0.01% 미만으로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반면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사라지면서 유사시 연합 방위태세의 차질이 우려되고,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에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군 고위당국자는 “미 전략무기 등 대규모 전력이 참가한 한미 연합훈련은 대북 억지 외에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유지 확대라는 전략적 함의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 폐지를 미국의 ‘한반도 발 빼기’로 보고 군사굴기 등 세력 확장에 나설 경우 한반도 등 역내 정세가 격화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겨우 수백억 원을 아끼려고 한미동맹의 근간인 연합훈련을 폐지한 것은 전략적 실수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니얼 러셀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최근 한 전문가 대담에서 “유사시 한국과 주한미군 방어를 위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 것은 ‘끔찍한 실수(dreadful mistake)’”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연합훈련 폐지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더 바싹 다가오도록 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시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주최한 북핵 및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서 “지난해부터 한미 양국이 연합훈련을 유예하고 축소·폐지했지만 북한은 이를 ‘인센티브’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이후로는 재래식 전력 위주의 한미 연합훈련을 더는 두려워하거나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이 작년 군 관련 기념행사에 일선의 작전 지휘관들을 모조리 불러들인 것은 핵무기 보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며 “한미 연합훈련은 비핵화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