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는 ‘프랑스 화보가 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에서는 컬러 화보를 앞세운 ‘삽화신문’이 앞다퉈 등장했다. 컬러 그림 인쇄가 정교하면서 빨라졌고 제작비도 내려갔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화가 겸 기자’를 각지에 특파원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1840∼1842년 1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면서 이 저널들의 중국 관련 보도도 급증했다.
책은 1850∼1937년 ‘르 프티 주르날’ 등 프랑스 삽화신문들에 실린 중국 관련 화보 400여 점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청 황제와 관료들의 근엄한 모습이 있고, 전쟁과 반란으로 피 흘리는 병사와 민중이 있다. 책머리에 실린 중국 인사들의 추천사에서 보듯 이 삽화들은 자주 ‘예술의 경지를 오간다’. “서태후, 광서제 등의 이미지는 중국에 남아 있는 자료와 상당히 다르다. 프랑스인이 가진 심미안의 독특함과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제국주의의 제물로 놓인 한 세기 전의 이웃이 단지 ‘타자(他者)’일 수는 없다. 우리 땅을 배경으로 펼쳐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삽화도 여럿 실렸다. ‘르 프티 주르날’ 1894년 8월 13일자 1면은 남대문처럼 보이는 성문과 초가를 배경으로 중국인과 서양인, 일본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삽화를 담았다. 청일전쟁이 발발한 지 19일 뒤였다. 조선인의 모습은 없다.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막상 우리는 국외자였음을 적시한 것처럼 느껴진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