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따금 예기치 않은 곳에서 역사의 상처와 마주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해군 장교였던 피에르 로티의 자전소설 ‘자두부인’은 좋은 예이다. 이 소설의 영어판 제목은 ‘일본과 한국―자두부인’이지만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240쪽 중 한국에 관한 부분은 20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은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환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티가 서울을 찾은 건 1901년 6월이었다. 그는 프랑스 해군 제독과 함께 고종 황제를 방문하면서 서울에 며칠간 머물렀다. 그리고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소설의 일부로 삼았다. 조선은 그가 보기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서울에 늘어선 집들을 보며 그 모습이 거대한 묘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나라의 수도를 무덤들이 끝없이 펼쳐진 묘지로 생각하다니 지나치긴 했지만 그는 조선의 운명과 관련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서울의 공기에서 이미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통찰력의 예리함과 달리, 그는 문화적 인식에 있어서는 둔하고 오만하고 무례했다. 고종과 황태자(순종)가 베푼 연회에서 들은 조선의 음악을 프랑스 군악대의 힘찬 음악과 비교하며 ‘불길한 고함소리’ 정도로 인식한다거나, 곡예사들의 합창을 멀리서 들으면 풀밭에서 울어대는 ‘벌레들의 즐거운 합창’ 정도로 들릴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눈에는 조선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모습도 고루하고 기만적이고 무료했다. 그의 눈에는 그것만이 아니라 조선의 ‘모든 것이 불합리하고 예측 불가능’이었다. 그는 서양의 오만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동양을 낮춰본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였다.
그렇게 역사의 상처가 들춰질 때 새겨야 할 것은 우리의 힘이 약할 때 상처가 생긴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문화의 힘, 국가의 힘이 강해야 하는 이유다. 그 힘이 약해지면 상처는 또 생긴다. 역사 속의 상처를 응시하고 성찰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이유다.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