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결국 1953년 6·25전쟁 이후 이어져 온 한미일 3국 안보 공조 체제를 밑동부터 흔드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축)’으로,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으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는 동북아 전략을 구사해 왔는데,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계기로 그 기본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는 것.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일 태국 방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상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는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며 “우리로서는 모든 걸 테이블에 올리고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별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즉답이 없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반응이) 무언(無言)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엄중한 반응으로 해석이 되지 않느냐”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여기에 군은 그간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 때문에 중단해 왔던 독도 방어 훈련을 이달 중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토 수호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지만,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전선을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부가 안보 문제를 연이어 꺼내든 것은 미일 양국을 향해 “과연 일본이 한국의 우방이며 한미일 3국 공조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느냐”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일 “일본은 우리의 평화 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는 장애를 조성했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한미의 노력에 일본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논리로 백악관을 움직이겠다는 의도다.
관건은 미국의 태도다. 일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놓고서는 워싱턴 조야에서 “폐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처음으로 ‘린치핀’과 ‘코너스톤’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아직 백악관은 한일 양국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폭주가 어디까지 전개될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미국의 동북아 핵심 안보 전략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트럼프의 침묵이 마냥 길어질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경제 도발이 경제를 넘어 안보 지형까지 흔드는 위험천만한 선택임을 워싱턴이 인지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자산을 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 · 한기재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