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 허용과 북한 해외 노동자 송환 등 대북제재 일부 해제와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기습 제출했다. 두 나라는 해당 결의안을 제출하기 전 그 내용을 한국 정부와도 공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6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 제출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이 이사국에 회람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11일 북한 비핵화 관련 안보리 회의 등에서 대북제재 해제나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안 초안에서 “안보리는 북한의 결의안 준수를 고려해 대북제재 조치를 조정해야 한다”며 “대북제재위원회가 인도주의와 민간 생계 목적의 대북제재 면제 요청에 가장 우호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동상 수출 금지(대북제재 결의 2321호) △해산물 수출 금지(2371호) △섬유와 의류 수출 금지(2375호) △북한 해외 노동자 송환(2375호, 2379호) 등 북한의 외화 획득과 관련된 분야의 제재 해제를 거론했다. 두 나라는 “남북 철도와 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기존 대북제재에서 면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무대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중대 도발을 할 때 미국의 제재 강화를 요구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제재 완화를 언급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이날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 전환,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향한 외교에 전념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해 결의안 통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의 북핵 수석대표·차석대표 등 각급 당국자들 간 소통을 통해 남북 철도 및 도로 협력에 대한 제재 완화가 결의안에 포함된 것을 사전 인지하고 있었다. 정부는 다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상임이사국들이 반대하면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중국과 러시아에 특별한 입장을 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남북협력사업이 해당 결의안의 제재 완화 대상으로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과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현지 조사를 위한 제재 면제를 미국과 유엔에 요청했던 만큼 중-러 결의안에 반대했다가는 남북 합의 정신을 위반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7일 ‘중-러와 협의했느냐’는 질문에 “한국은 이해당사국”이라면서도 “중-러 결의에 포함될 요소, 빼야 할 요소를 이야기했다고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한국이 대북제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과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중-러 사이에 낀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용 parky@donga.com · 신나리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