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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전설이 된 선장들

Posted January. 17, 2020 07:40   

Updated January. 17, 20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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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장은 정해진 당직 시간이 없다. 24시간 당직이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에는 취미 활동을 한다. 신동아 등 월간지를 외우다시피 하는 선장도 있다. 그는 식사 시간에 월간지 기사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준다. 특정한 물건을 집요하게 수집하는 선장도 있다.

 가끔은 천재성을 지닌, 무엇이든 잘하는 선장들이 나타나 후배들을 주눅 들게 했다. 좋은 예가 있다.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부산 롯데야구단을 수년간 연구한 선장이 있었다. 그는 선상에서 원고를 써 ‘필승전략 롯데 자이언츠’라는 책을 1990년 발간했다. 그 내용에 감동받은 롯데야구단에서 그를 구단주로 모시고 갔다. 그는 2년 동안 구단주를 하면서 최하위의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배로 돌아와 도선사로 활동 중이다.

 1960년대 한국해양대에서는 항해학과 50명, 기관학과 50명의 해기사들이 졸업했다. 그런데 이들이 승선할 선박이 없었다. 국비로 키운 학생들에게 일자리가 없는 점을 안타까워하던 선장 출신 해양대 교수 한 분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곤 스스로 선장이 돼 일본 선박 한 척에 한국 선원들을 태우고 선원 송출(해외로 보냄)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선원 송출은 1980년대 5만 명에 이르렀고 연간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했다. 교수직을 과감하게 던진 선각자 선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해운 발전은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 중동 사태가 악화되었는데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한국은 매일 대형 유조선 한 척이 원유를 싣고 입항한다. 대부분 중동에서 출발한다.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 정유사가 용선한 선박의 선원들이 페르시아만 입항을 거부했다. 정유사는 야단이 났다. 이 선박이 원유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큰일이 발생한다. 이에 용선을 나간 한국 선박을 찾아 원유 수송을 의뢰했다. 이 명령을 받은 선박의 선장은 선원들을 모아 일장 연설을 했다. “죽을 각오로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서 원유를 싣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 조국의 산업시설이 멈춘다. 같이 들어가자. 반대하는 사람은 하선해도 된다.” 우리 선원들은 누구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선장은 무사히 원유를 싣고 한국에 입항했다.

 이번에는 다른 동해안 어선 선장의 이야기이다. 그는 선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선이 된 어선을 몰다가 항구의 방파제에 충돌해 배가 침몰했다. 해당 선주는 어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그 선장은 다른 선주의 어선 선장이 되었다. 그는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사고 선박의 선주를 찾아와 안부를 묻고 명절 인사를 했다. 잘못에 대한 사과였다.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간 선장은 만선의 꿈을 이루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수덕(水德)이 있는 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후에는 동해안의 최고 선장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전설이 된 선장들이 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장이 바다에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이들이 있기에 무역도 가능하고, 전기도 켤 수 있고, 수산물도 식탁에 올라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