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살아계신데 어찌 감히 먼저 책을 내느냐’ 하시는 분들도 있죠. 발칙하다고요? 혁신적이라고 해주시죠.”
국악인 최영진 씨(41)가 첫 에세이집 ‘타인의 인력’(토일렛프레스)을 냈다. 층층시하의 국악계에서 일종의 자서전을, 그것도 40대 초반에 낸 셈이다. 최 씨는 “스승이 음반을 안 냈으면 제자도 음반을, 책을 안 썼으면 제자도 책을 안 내는 게 불문율인 국악계이지만 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 씨는 국악계에서 마당발 코뿔소 불도저로 통한다. 월드뮤직그룹 ‘이스터녹스’ 음악감독, 한배아트컬쳐스 예술감독이자 무형문화재 ‘봉산탈출’ ‘김제농악’ 이수자. “예술가는 관종(‘관심 종자’를 뜻하는 인터넷 속어)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 우물만 파라’는 금언을 최 씨는 귓등으로 듣는다. 정악 민속악 창작음악의 세 축을 정신없이 오간다. 어려서부터 나대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 응원단장을 하며 줄다리기 선수들에게 휘모리장단을 알려줬다. ‘덩’과 ‘쿵’의 박자에 힘을 집중하도록 훈련시켜 3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입영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려고 탄 시외버스에서는 다짜고짜 마이크를 잡고 초면의 승객들에게 여흥을 부추겼다.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자,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행열차’ 한 곡 뽑겠습니다. 자, 사탕들도 드시고. 다음 순서는….”
전남 여수공고를 거쳐 서울예대 국악과를 나왔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 있던 장구를 직감적으로 쳐본 게 시작이었다. 책에는 그가 이후 김규형 김청만 박현숙 성애순 양연섭 양승희 조순애 하주화 등 명인을 찾아가 부딪치며 배운 이야기가 빼곡하다. 군악대 시절 대통령 앞에서 대취타를 연주하다 한 실수 같은 좌충우돌 경험담을 진솔하게 담았다.
최 씨는 3년 전 유튜브에 ‘달린다 최선생’ 계정을 개설했다. 혼자서 셀카봉 들고 인기 게임 ‘포켓몬고’를 하며 동분서주하는 것부터 촬영했다. 진귀한 몬스터를 잡으면 국악 구음(口音·입으로 내는 모든 소리)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젊은층에 어떻게든 국악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이 채널에 국악 공연 실황을 쌓아 가고 있다. 2008년 시작한 10년짜리 프로젝트 ‘최영진의 장단’이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센터(02-523-6268)에서 여는 공연. 무협지의 도장 깨기처럼 모든 종류의 산조 반주를 하나씩 해나가며 이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올해로 가야금 쪽이 마무리되면 거문고로 갑니다. 25명의 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셈이죠.”
책 제목 ‘타인의 인력’에서 타인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打人)이다. 그는 “최초의 장구 인간문화재(국가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국악을 처음 시작하거나, 10년간 국악을 했는데 목표의식을 잃은 분들이 제 책을 봐줬으면 합니다. 음악은 무대 위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