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낮 12시부터 정상 간 핫라인 등 남북 간 4개 통신선을 차단하고, 대남 사업을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4·27 판문점 선언을 앞두고 그해 4월 20일 개통된 청와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무실이 있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사이의 ‘핫라인’을 781일 만에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위협한 지 닷새 만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대남 액션플랜에 나서면서 남북 관계가 2018년 이전, 더 나아가 한반도 위기설이 나오던 2017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6시경 “환멸만 자아내는 남조선 당국과 더 이상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통신은 “8일 대남사업부서 사업총화회의에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김영철 동지와 김여정 동지는 대남 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적 대적 사업 계획을 심의했다”고 했다. 이번 조치가 대남 사업총괄인 김여정과 통일전선부장을 지내며 남북 및 북-미 협상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대남 강경파 김영철이 주도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북한이 “완전 차단하겠다”고 밝힌 통신선은 △청와대-노동당 중앙위 핫라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연락선 △남북 동·서해 군사통신연락선 △남북 통신시험연락선 등 4개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오전 9시경 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연락 시도는 물론이고 낮 12시 통화 연결 시도 때도 받지 않았다.
특히 북한이 “이번 조치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강조한 만큼 추가 조치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9일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은 채 침묵했다. 하반기부터 남북 협력을 가속화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청와대 내부에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류다.
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 · 박효목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