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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코로나 백신 논란

Posted August. 13, 2020 07:31   

Updated August. 13, 20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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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가 11일 세계 최초로 공식 등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두고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3상 시험을 거치지 않은 이 백신을 두고 영국 연구진이 “물보다 나을 게 없다”고 비판하자 러시아 측은 “서방이 우리의 성과를 조직적으로 폄훼하고 있다”고 맞섰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부펀드 직접투자펀드(RDIF)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이날 “러시아 백신에 대해 조직적이고 치밀한 정보 공격이 이뤄지면서 백신 개발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서방의 정치적 접근은 오히려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발표한 후 미국 독일 등이 ‘러시아 백신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자 이를 재반박하면서 나왔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러시아 발표 후 ABC방송에 “중요한 것은 최초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세계 최초’와 ‘백신 패권’을 손에 쥐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상용화한다고 비판했다. 영국 서식스대 연구진은 더선에 “여러 과정이 생략됐다. 특히 3상 시험 생략은 전례가 없는 일”며 “자칫 물보다 나을 게 없는 백신이 접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 2, 3상 임상 시험은 의약품 개발의 국제표준이다. 3상에서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백신의 안전성을 최종 승인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3상 시험을 실시한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자국 백신이 이달 초까지 2상 시험을 거쳤다고 발표했을 뿐 백신 관련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러시아 백신을 두둔했다. 그는 자국 내 TV연설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백신 무상 공급을 제안했다”며 “내가 첫 시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적 확진자가 14만 명에 육박하는 등 동남아시아 중 감염자가 가장 많아진 자국 상황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일각에서 러시아가 먼저 백신 개발을 정치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 이름은 ‘스푸트니크 V(Sputnik V)’. 옛 소련 시절인 1957년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에서 따온 명칭으로, 냉전시대 속 미국과 소련의 경쟁을 상징한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 정부를 철저히 의식해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역시 올해 4월 자국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초고속 작전’으로 명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 백신의 명칭은 국가적 자존심과 전 세계적 백신 경쟁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종류 백신의 3상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미 제약사 모더나와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노바백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프랑스 사노피, 독일 바이오N테크 등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미 57억 회분의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사전 주문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 공조보다 코로나19 첫 백신 개발국이 되는 것이 각국의 목표”라며 ‘백신 패권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단 러시아 백신에 대한 의학적 검증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 임상시험기구연합도 3상 시험이 완료될 때까지 승인 연기를 촉구하는 서한을 11일 러시아 정부에 보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