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모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가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불로 덮은 가슴 위에는 감자튀김이 수북한 접시를 얹어 놓았다. 배경에는 잔뜩 쌓인 신발들과 함께 붓통과 불 꺼진 전구가 보인다. 만화의 한 장면 같은 이 그림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필립 거스턴이 60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추상화가였던 그는 왜 돌연 이렇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한 자화상을 그린 걸까?
1913년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거스턴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 목격한 아버지의 자살과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의 활동은 훗날 그의 작품과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청년 시절엔 인종차별, 폭력, 파시즘에 반대하는 주제의 대형 벽화로 주목을 받았고, 1950년대엔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의 기수가 되었다. 추상화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거스턴은 1968년 갑자기 구상화로 전환했다. 전구, 신발, 담배, 두건을 쓴 KKK 단원 등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채워진 만화 같은 그림에다 색채도 제한돼 있어 기괴하고 유치해 보였다.
1970년 신작들이 공개되자 “이건 예술이 아니다”는 조롱과 혹평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숙덕거렸다. 미술계에서 고립된 거스턴은 고독을 담배로 달랬고, 상실감을 음식으로 채웠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부터 과식과 하루 담배 3갑을 피우는 습관이 시작됐다. 커다란 외눈, 상실된 코와 막힌 귀,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신발 더미, 통에 거꾸로 처박힌 붓 등이 그려진 이 자화상은 그의 불안한 심리와 비극적 상황, 무기력한 몸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그가 추상화를 포기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미국에선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함께 68혁명의 바람이 불었다. 몸은 노쇠해졌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림은 불순한 것이라 믿었던 그는 순수성을 내세운 추상 대신 서사와 풍자가 가능한 구상화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와 그 구성원인 자신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