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0세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년 더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민주당은 올해 상·하원 선거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고, 변화를 요구하는 신진 세력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그의 노련함과 전투력을 넘어설 인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18일 화상으로 진행한 선거에서 단수 후보로 나온 펠로시 의장을 재추대했다. 그는 내년 1월 하원에서 투표 절차를 거쳐 제117대 의회의 하원의장으로 2년간 재임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현재까지 하원의원 435명의 과반인 219명을 확보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2022년까지 임기를 채우게 될 경우 20년간 민주당을 이끄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1987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2003년부터 민주당 1인자의 자리를 지켜 왔다. 2007년 여성 최초의 하원의장으로 선출되며 4년간 의회를 주물렀고,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다시 하원의장 자리를 차지했다.
펠로시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심판론이 거셌던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블루 웨이브’의 물결을 타고 하원은 물론이고 상원까지 장악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과 달리 상원 과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하원은 간신히 다수당을 유지했지만 공화당에 10석이나 뺏겼다. 이런 초라한 성적표에 책임론이 불거졌고, 민주당 내 젊은 신진 세력들까지 끌어안는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졌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정치력으로 당내 지도부를 장악하며 2년간의 임기를 더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러시아 스캔들’이 터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었고, 남부 국경장벽 설치와 불법 이민자 정책에 반대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붙었던 전투력은 당내에서 따라갈 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힐에 따르면 그가 당에 끌어온 정치 후원금은 기록적인 금액으로, 재정적인 기여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향후 2년은 가장 힘든 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펠로시 의장이 직면한 과제들은 만만치 않다. 강경 좌파를 비롯한 당내 세력들의 알력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는 데다 현 지도부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불만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리더십과 상임위 의장에 대한 (시간적) 제한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하원의장에 선출될 당시 “4년만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원의장 임기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펠로시 의장 외에 81세 스탠리 호이어 민주당 원내총무와 80세 짐 클라이번 하원 원내총무도 이날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재추대됐다. 이로써 미국 정치는 78세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초고령 행정부 및 집권 여당 체제로 들어서게 됐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