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수군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운명에 맞서야 했고, 역사에 커다란 굴곡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군은 조선에서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병사들이었다. 오죽하면 조선 중기 이후에는 7가지 천역의 하나로 간주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수군이 상대적으로 적고 약했던 것도 아니다. 경상, 전라, 충청 지역은 수군이 육군보다 훨씬 많았다.
수군이 천대받은 이유는 고되고, 죽거나 병들 위험도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권력형 부조리와 학대의 주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바닷가 지역 공물에는 해산물이 많았다. 소금은 전국적인 상권을 지닌 상품이었다. 수군 병사들은 군 복무 기간에 소금 생산과 해산물 채취 사역에 동원되었다. 당시의 전선들은 풍랑과 파도에 극도로 취약했다.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걸릴 확률도 높았다. 도망치는 병사들이 늘자 정부는 수군 세습제라는 극약처방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수군역은 더욱 힘들고 기피하는 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100년 이상 이어졌다. 임진왜란 전 전쟁준비를 해야 하는데 수군은 병력도 물자도 부족했다. 이순신이 휘하 부대를 순시하면서 불비한 점을 지적하면 장수들이 고충을 얘기했다. 백성들이 지쳤고, 물자도 여력도 부족합니다. 이순신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래도 해야 한다”였다. 그리고 정운처럼 끝내 해내는 부하를 좋아했다. 만약 법대로 사역시간을 줄이고, 야간 사역을 금지했다면 이순신 부대의 승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면 당장 비판을 받는다. 이런 논리가 악용된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리를 원천봉쇄한다고 맹목적으로 정의로운 법을 세우고 시행을 강제했더라면 조선이 붕괴되었을 수도 있다. 정의롭지 않아서 정의로운 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기에 정의로 포장한 어리석은 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법으로 금지할 사안과 운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 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더 큰 비극을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