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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뜰

Posted April. 17, 2021 07:19   

Updated April. 17, 20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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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우만이라는 철학자는 오늘날의 우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각자 자신의 보호막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런 현대인의 특징은 공허함이다. 인터넷 세계는 넓어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확장되었지만 접속이 끊기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공허하다. 공허하니까 접속하고, 접속할수록 다시 공허하다. 마실수록 갈증이 커지는 것이 바닷물 마시기와 비슷하다.

 그런데 고독은 공허함과는 조금 다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쌉싸름함을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텅 비어 있지만 허전해서 못 견디는 편은 아니다. 고독은 텅 빈 상태를 긍정한다. 오히려 뭐든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다. 고독을 통해 비어 있음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면 빈 곳에 나 자신도 채워 넣고 의미도 찾아 넣을 수 있다.

  ‘빈 뜰’이 바로 고독의 시다. 이탄 시인은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특히 허무, 고독의 분위기를 잘 포착했다. 시를 한번 보자. 만개한 꽃이 지고 나니 뜰이 텅 비어버렸다. 눈앞이 허전해지니 마음도 따라 허전해진다. 이 허전함이 고통스럽다면, 그래서 외면하고 싶다면 빈 뜰은 공허함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시인은 성찰하여 공허함을 고독으로 바꾸어 나간다. 꽃이 다 떨어져 뜰이 허전한 듯했지만 사실 빈 뜰은 비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그곳이 햇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 괴로운 나날들이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후회되는 과거도 있다. 하지만 당장 한 줄 실적이 없다 해도 그 시간이 영영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친 날에도, 잃은 날에도 아직 햇빛이 있다. 여전히 햇빛이 있다. 빈 뜰은 영 비어 있지만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