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러시아 전역에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전 러시아진보당 대표(45)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같은 날 국정연설을 가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발니를 지지하는 서방을 겨냥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푸틴 정권은 이날에만 1000명 이상의 시위대를 체포하며 나발니를 석방하지 않을 뜻을 드러냈다.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에는 시민들이 집결해 구금 중인 나발니 석방을 외치고 푸틴 대통령을 규탄했다. 감옥에 갇힌 남편 대신 반정부 시위 등을 주도하고 있는 나발니의 동갑내기 아내 율리야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위대는 ‘(나발니에게) 자유를’ ‘푸틴은 도둑’이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일부 시위대가 크렘린궁으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격돌해 20명이 연행되는 등 이날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나발니가 이끌던 반부패재단(FBK) 소속 변호사 류보피 소볼, 나발니의 비서 키라 야르미시 등 측근들도 이날 줄줄이 연행됐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누구도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레드라인’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며 “러시아에 대한 도발을 조장하는 이들은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서방이 아무 이유 없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이 새로운 스포츠가 됐다”며 미국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 제재를 추진하는 유럽연합(EU) 주요국을 혹평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을 소설 ‘정글북’에 등장하는 호랑이(시어칸)와 호랑이에게 아부하는 승냥이(타바키)에 비유하며 “주인(미국)에게 잘 보이려 짖어댄다”고 혹평했다. 앞서 미국이 러시아 외교관을 대거 추방하자 체코,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도 유사한 추방을 단행한 것을 비판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17일 체코는 2014년 10월 남동부 브르베티체 탄약 창고에서 발생한 폭발로 2명이 숨진 사건이 러시아 정보당국이 저지른 테러라고 규탄하며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18명을 추방했다. 당시 창고 안에는 체코가 우크라이나군에 전달하려던 무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3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며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거센 지탄을 받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전력 강화를 우려해 이 창고를 폭파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 정권은 친러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러시아군을 투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돈바스 인근에 크림반도 병합 당시를 능가하는 약 12만 명의 러시아 병력이 배치됐다고 전했다. 크림반도 인근 해상에도 여러 척의 러시아 군함들이 배치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 크림반도 내 비행장에 러시아의 수호이(Su)-30 전투기가 배치된 위성사진을 보도했다. 이에 미국 역시 러시아 침공 우려에 대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대전차미사일, 패트리엇 대공미사일 시스템 등을 포함한 많은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가 침공하면 미국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