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아침이면, 언제나처럼 멱을 감은 다음 볕이 잘 드는 문 앞에 앉아 해 뜰 녘부터 한낮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주변에는 소나무 호두나무 옻나무가 무성했고,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호젓함과 정적이 사방에 맴돌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숲속의 생활’ 중
소로는 184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 숲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2년 2개월을 살았다. 한나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숲을 바라보던 그는 서쪽 창에 비치는 햇빛이나 멀리 마차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시간이 흘러간 것을 깨닫곤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그는 밤새 훌쩍 커버린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고 고백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근처 책방 서가에 꽂힌 작은 문고판 책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소로의 ‘월든’. 이 책은 그날부터 내게로 와서 든든한 삶의 버팀목, 가장 소중한 나의 책이 되었다. 허름한 차림새, 고요한 눈빛의 철학자가 적막한 숲속 집 앞에 앉아 사색에 빠진 모습은 수십 년 동안 내 마음속에 있었다. 언젠가 시골 마을 한편에 나만의 오두막을 짓고 살겠다는 꿈도 잊은 적이 없다. 문간에 앉아 하루 종일 햇볕을 쬐며 아무 생각 없이, 심지어 공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숲을 바라보고 싶다. 마음이 옥수수처럼 쑥쑥 성장하기를 바라며.
모두들 어떻게 하면 더 물질적 풍요를 누릴 것인가, 많은 부를 축적할 것인가에 몰두해 있는 시대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돈’, ‘부자’, ‘성공’과 같은 가치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듯 초조하고 숨 가쁜 욕망의 시대에도 단순한 삶을 실천한 19세기 사상가의 책 ‘월든’은 줄기차게 사랑받고 있다.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본 그의 철학이 소유욕의 노예가 된 현대인에게 휴식과 평온, 돌아봄의 시간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