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문학 소양과 음악적 기예로 당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 강채평. 매화를 사랑한 그녀를 황제는 매비(梅妃)라 불렀다. 한데, 황제의 총애가 양귀비에게로 넘어가면서 그녀는 황제의 시야에서 멀어졌고 내궁에 갇히다시피 한 채 적적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버림받은 아픔보다 길고 긴 망각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게 더 가혹한 시련이었을 터. 하여 여인은 단장도 치장도 마다하고 눈물로 적막감을 달래고 있다. 한때 황제는 은밀히 매비를 만나려 시도했지만 양귀비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하자 대신 선물을 보내 그녀를 다독이려 했다. 아무리 황제의 하사품이라 한들 몸단장을 포기한 여인에게 진주가 다 무슨 소용이랴. 매비는 오래도록 장문궁(長門宮)에 유폐되었다가 끝내 병사한 한 무제의 진황후(陳皇后)에게 자신의 참담한 처지를 투영하면서 선물을 거절한다.
현종이 까마득히 잊었던 매비를 떠올린 건 안사의 난이 평정되고 양귀비마저 세상을 떠난 한참 뒤의 일. 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낸 게 매비의 초상화였다. 사무치는 회한을 담아 황제는 ‘매비의 초상에 부치는 시’ 한 수를 지었다. “그 옛날 자신궁(紫宸宮)에 살던 어여쁜 매비 그립구나. 화장하지 않아도 타고난 미모가 대단했었지. 흰 비단 속 초상이 당시 모습 닮긴 해도 어찌할 거나, 예쁜 눈동자 사람을 몰라보는걸.” 옛 정인의 아리따운 모습을 되살려보려는 애틋함이 간절하다. 하지만 실총(失寵)의 헛헛함을 달래려 아등거렸을 여인의 심정은 여전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