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익명의 할머니가 홀몸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청. 평소와 다를 것 없던 목요일 오후 2시경 80대로 추정되는 한 할머니가 구청 복지과를 찾아왔다.
“홀몸노인이나 다른 어려운 이웃들한테 기부하고 싶은데요.” “네, 잠시만요.”
할머니를 안내했던 김기섭 주무관이 기부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온 사이, 할머니는 사라지고 책상 위에는 흰 편지봉투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김 주무관이 얇은 봉투를 열어보니 무려 1억5225만367원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그동안 강남구에 접수된 개인 후원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구 관계자는 “그동안 작은 박스에 1000원짜리 지폐를 가득 채워 구청에 두고 가거나, 저금통을 익명 기부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큰 금액을 기부받은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황급히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얼마 안 가 구청 앞 거리에서 할머니를 만나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할머니는 “이름이 알려지면 (기부) 안 하겠다. 그러니 묻지 말아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김 주무관은 할머니가 구청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 강남구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강남복지재단을 통해 홀몸 어르신 등 저소득층을 위해 기부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시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렇게 선행을 베풀어 주셔서 가슴이 뭉클해졌다”며 “기부자의 숭고한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기부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자가용이 아닌 버스를 타고 가셨다고 하니, 평소 얼마나 소중하게 모은 돈일지 짐작이 돼 더욱 감동적이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해 달라” “천사 할머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청아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