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더 비열해지고 누군가는 더 인간적이 된다. 방수포를 씌운 트럭을 타고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검문소에 도착하자 젊은 러시아 군인이 다가온다. 그의 눈이 트럭에 탄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검은색 숄을 두른 젊은 기혼 여성에게 멎는다. 병사는 통역을 통해 그들을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어떤 남자가 창피한지도 모르냐고 묻는다. 전쟁에는 창피고 뭐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남자가 통역에게 말한다. “틀렸다고 하시오. 전쟁은 품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울 때보다 더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전하시오.” 군인은 화를 내며 전부 쏴 죽이겠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가 “총알을 천 번 맞더라도 이런 상스러운 짓이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이 벌벌 떨며 러시아 병사가 진짜로 죽이려고 하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말린다. 그는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통역을 향해 말한다. “저자에게 나를 한 방에 쏴서 죽이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저 자식을 찢어 죽이겠다고 하시오. 후레자식 같으니!”
누군들 목숨이 소중하지 않으랴. 그러나 그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목숨을 걸려고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욕이 아니라 품격의 소리다. 다행히 러시아 장교가 다가와서 공포를 쏘며 러시아 병사를 제지하고 사과한다. 국가는 싸우라고 보냈지만 어린 병사들이 전장에 와서는 마약에 빠져 저런 짓을 한다고 사과한다. 품격에 품격으로 응수한 것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 나오는 일화다. 전쟁은 인간의 비열함과 품격을 동시에 보여준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스럽고 암울해 보여도 그나마 살 만한 것은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그러한 품격이 있어서다. 품격이 비열함을 이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