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외국 작곡가 노래를 외국어로 공연했어요. 최근 들어 무언가 한국적인 것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극장에서 만난 세계 정상의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 씨(59)는 ‘한국적’이라는 말에 힘을 줬다. 조 씨는 이날 저녁 이 극장에서 제14회 한-프랑스 친선 공연 ‘평화를 위한 디바’ 무대에 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콘서트가 대부분 취소돼 2년여 만에 오른 유럽 무대였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거침없이 “가장 우수하게 잘하는 것”이라며 “한국인은 뭐든 열심히 하고 잘한다. 세상이 그런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류나 한국 문화의 결과물 자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각광받는다는 의미다.
조 씨는 “(데뷔 후 36년간) 한 번도 ‘최정상에 섰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며 “늘 제 자신이 부족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극복하려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팔과 등 근육은 탄탄했다. 최상의 무대를 위해 매일 운동한 결과다. 조 씨는 자신의 우상 마리아 칼라스(1923∼1977년)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있다고 했다. 오페라의 전설 칼라스는 술 담배에 빠지며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2003년부터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으로 활동하는 조 씨는 이날 공연 제목이 ‘평화’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승자는 없고 아까운 인명피해만 커지고 있다. 무의미한 희생을 멈춰야 한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조 씨는 ‘한국적인 것은 가장 우수하게 잘하는 것’이라는 자기 말을 증명하듯 무대에서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아리아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 한국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등을 열창해 관객의 찬사를 끌어냈다. 함께 공연한 프랑스 바리톤 플로리안 상페, 미국 피아니스트 제프 코언은 공연 도중에도 박수를 보냈다.
조 씨는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현재 KAIST와 함께 예술에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기술을 연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와 제작 중인 음악 다큐멘터리는 9월경 나온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유럽을 강타했을 때 이탈리아에 살던 조 씨는 시신들이 군용트럭에 실려 묘지로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가족과 작별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공연이 모두 취소됐어요. 그때부터 휴대전화로 녹음하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활용했어요.”
12월 ‘첫사랑’을 주제로 한 대중적인 앨범을 발표한다는 조 씨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감정에 대한 기억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