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 7월 27일은 아주 덥고 습한 날이었다. 프랑스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을 반대하는 여론을 돌리고자 연설에 나설 계획이었다. 프랑스 혁명에 참가한 이들 사이에서 공포정치를 일삼던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던 때였다. 연설 당일 로베스피에르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고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때마침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군중은 흩어졌다.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린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코뮌에 보내는 호소문을 작성하던 중 군인들에게 체포됐고 바로 그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날씨에서 자유로운 역사는 없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변곡점마다 등장한 날씨의 영향력을 살핀다. 1944년 여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와 달리 잠잠한 파도와 풍랑 덕분이었다. 1941년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막은 데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추웠던 혹한기와 폭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홍수, 가뭄, 추위 등 날씨가 인간 사회의 번영이나 몰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저자가 언급한 마지막 사례는 2005년 대서양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다.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만 1400여 명이 희생됐다. 제방과 운하, 펌프 등 홍수를 막기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었다. 카트리나는 미국인에게 그 어떤 첨단 기술로도 대자연은 잠재울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줬다. 저자는 인간이 기후변화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을 인정하지만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적 요인에 의해서도 기후는 갑작스레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가 인류사에 반복된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김태언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