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감정은 몹시 독특하다. 사랑하는 무엇이 사라질 때 비로소 그리움은 시작된다. ‘없음’을 알지만 간절하게 ‘있음’을 희망한다면 그게 바로 그리운 거다. 부재와 바람, 불가능과 가능, 허전함과 달콤함 사이에 바로 그리움이 있다.
어떤 학자는 그림, 글, 그리움의 어원이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의 주장이래도 시인들에게는 틀림없는 참말이다. 생각을 긁어서 쓰면 글이 되고, 형상을 긁어서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을 긁어서 모으면 그리움이 된다. 시인들은 말로 그림을 그리고, 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리움을 말과 그림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이 셋은 서로 친족관계에 있는 말이다.
분명 무엇인가 잃어야 시작되는 게 그리움이라고 했는데, 잃지 않고서도 매양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형체 없는 그리움이 두 다리와 팔을 가지고 사람이 된다면 아마 그 이름은 ‘어머니’가 될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이 곁에 누웠어도 그리워하고, 멀리 떠나면 더 그리워한다. 사람의 속은 피와 장기로 채워져 있다는데 어머니의 속은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진 것 같다.
오늘 소개하는 시에도 그리움이 된 어머니가 등장한다. 자다 깨서 아들이 보고 싶다고 울고, 허리가 아파도 아이 실내화를 빠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은 직감한다. 아, 저 사람의 몸은 그리움의 샘이로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움의 설명을 조금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무엇이 생겨나는 그때에 그리움도 시작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