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높이뛰기 결선. 야로슬라바 마후치크(21·우크라이나)는 2m04 3차 시기에서 실패한 뒤 매트에 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관중석에서는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금메달을 선사하겠다는 마후치크의 도전이 은메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2m02를 2차 시기에 넘은 마후치크는 같은 높이를 1차시기에 넘은 엘리노르 패터슨(26·호주)에게 1위를 내줬다.
하지만 마후치크가 “계속 국제대회에 나와 우크라이나가 여기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듯 그의 도약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대회에 나설 때마다 마후치크는 우크라이나의 상징색인 노란색, 파란색을 온 몸에 표현한다. 저항의 의미이자, 세계에 우크라이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날도 그는 아이라인, 매니큐어까지 모두 노란색, 파란색으로 채웠다.
마후치크는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세계실내육상선수권 참가를 위해 3월 국경을 넘은 뒤 아직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집이 있는 동부 드니프로는 여전히 위험하다. 그는 터키, 독일 등을 떠돌며 훈련을 이어왔다. 차로 꼬박 사흘이 걸렸던 피란 직후 참가했던 실내선수권에서 마후치크는 2m02를 뛰어넘어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이번 대회는 세계육상연맹(WA)의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의 대회 참가 금지 조치로 마리야 라시츠케네(29·러시아)의 대회 4연패가 좌절되면서 마후치크의 우승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패터슨이 개인 최고이자 호주 기록을 세우는 돌풍을 일으켜 금메달 획득이 무산됐다. 마후치크는 라시츠케네가 WA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라시츠케네는 ‘자신이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사람이기 때문에’ 죽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역시 전쟁을 피해 훈련하며 대회에 참가한 안드리 프리첸코(34·우크라이나)는 전날 남자 높이뛰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에는 22명의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출전했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