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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달라 하지 마세요”…고물가•불경기•태풍에 우는 상인들

“더 달라 하지 마세요”…고물가•불경기•태풍에 우는 상인들

Posted September. 05, 2022 07:47   

Updated September. 05, 202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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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감사의 마음도 인심도 모두 넘쳐나는 추석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 추석은 길고 긴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거리두기 없이 맞이하는 첫 명절이다. 하지만 요즘 전통시장에선 추석 대목 특유의 시끌벅적한 활기를 느끼기 어렵다. 고물가 경기침체 수해의 3중고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웃을 여유를 잃었다. 사나운 태풍이 물폭탄을 몰고 올라온다는 예보에 상인들은 “마지막 희망까지 태풍이 쓸어가는 것이냐”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둘러본 서울의 전통시장은 지난달 호우 피해의 흔적도 채 씻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는 물가를 보며 추석 대목용으로 일찌감치 사들여놓은 곡물과 건어물이 자루와 냉장시설 째 물에 잠긴 곳이 많았다. 그래도 연중 최고 대목을 놓칠 수 없어 빚을 끌어 모아 새 냉장고를 사들이고 추석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도 있지만, 코로나 불황 끝에 덮친 폭우에 더는 버텨낼 도리가 없어 폐업을 준비 중인 가게도 보였다. 태풍 ‘힌남노’까지 올라오면 그나마 찾던 발길도 끊길까 몇몇 정육점은 소고기를 반 값 떨이 가격에 내놓았다.

 제수용품을 사러 나온 이들의 장바구니는 대부분 비어있다. 10만원을 쥐고 나왔는데 배추 한 포기에 1만원, 사과 10개들이 한 상자에 4만원을 달라고 한다.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이 평균 31만8045원으로 지난해보다 6.8% 올랐다. 송편 명태 과일을 차례로 빼 보아도 한 상 차려지지가 않는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 모이는 명절인데 친척 많이 올까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다. 인심 후하기로 소문난 가게를 찾았는데 주인은 눈길조차 받아주지 못 한다. 진열대에 스스로 걸어둔 야박한 안내 문구 탓이다. “재료값 올랐으니 더 달라고 하지 마세요.”

 호우 피해가 나자 구청장과 국회의원들이 앞 다퉈 찾아와 피해 상황을 묻고 갔다.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추석 전 피해 보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추석이 닥치도록 최대 400만원을 준다던 정부 재난지원금은 소식이 없다. 말은 빠르고 행동은 굼뜬 행정력은 초유의 경기침체와 고물가 사태가 민생을 초토화시킨 비상 상황에서도 달라지는 법이 없다. 살 것 없어도 한바퀴 돌고 나면 살아갈 힘을 얻곤 하던 씩씩한 전통시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바로 그 계절에 말이다.